참으로 어수선한 세상이다. 각종 뉴스를 접할 때마다 “왜 그랬대?” 하면서 어이없어 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이해하는 우리들의 입장도 양극으로 나뉘고 우리는 어느 한쪽에 속하거나 중도 노선을 걸으면서 어느 쪽에 편향된다. 잘했든 잘못했든 간에 누군가의 행동을 그의 입장 안에서 그의 심정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고 하자. 그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판단하는 사람이 되고 훈계하거나 명령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의 입장이 되면 우리는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판단하는 사람보다 이해하는 사람을 통해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잘못된 행동에서 돌이키게 된다.
비판의 돌을 던지려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로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는 이 자리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심으로 돌을 든 모든 이의 양심을 자극하셨고,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물러갔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가 있다고 인정한 것이니 이것이 더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이 성경도 우리가 새롭게 분석할 수가 있다. 첫째, 예수님은 “너희가 이 여인을 좀 이해해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럴만한 마음 상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마음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셨기에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표현을 쓰신 것이리라. 만약 그들 중 불손한 의도로 자기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셨으면 예수는 그 표현조차 쓰지 못하셨을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이 유명한 말씀을 하시기 전후로 아주 독특한 행동을 하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해 도대체 뭐라고 쓰셨을지가 궁금한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관심사를 무엇을 적으셨는지에 두지 않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그 행동 태도 자체에 두자. 왜 그러셨을까? 그럴 때 우리가 쉽게 해볼 수 있는 것은 비슷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연출해보는 것이다. 예수의 심정과 군중의 심정, 그리고 여인의 심정을 지금 머릿속에서 연출한 그 상황 속에서 이해해보는 것이다. 충실히 이해하려고 하면 그 의미가 조금씩 더 명료해질 것이다.
집단상담이라는 게 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하듯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상담하는 것이다. 치료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둘 같이 하기도 하지만 집단상담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치료자다. 서로에게 주는 자극에서 깨닫고 배우는 치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구성원은 치료자를 은근히 주목한다. 성경공부로 삶을 나누는 토론을 진행하는 중에도 성경공부를 주관하는 목사님 눈치를 보는 것과 흡사하다. 많은 구성원이 치료자와 눈을 맞추고 치료자와 대화하듯 이야기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치료자가 흔히 쓰는 치료적 기법 하나가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계속 눈맞춤을 하면 그 구성원은 다른 대상을 살피거나 다른 대상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경우가 흔히 생기기 때문이다. 치료자의 시선 회피는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가 더 많은 다른 구성원과 교류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예수는 중요한 말씀만 던지시고 그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셨다. 즉 그들을 훈계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그들끼리 서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놔두신 것이다. 그것은 진심으로 군중을 이해하고 계신 예수이기에 보일 수 있는 행동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예수님은 여인만 이해하신 게 아니라 군중도, 자기를 다그치던 그 몇몇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셨던 것이다.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예수님이 보이신 남의 심정을 이해하는 자세와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최의헌 <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남의 심정 이해하기
입력 2014-07-05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