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국축구] ⑤ ‘한국형 전술’이 없다

입력 2014-07-04 02:02

“한국형 전술을 만들어 브라질월드컵에 도전하고 싶다.”

2013년 6월 26일 홍명보 감독이 한국축구 사령탑에 오르며 한 말이다. 홍 감독은 “우리는 스페인도, 독일도 아니다”라며 “우리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전술을 만들어 월드컵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했다.

홍 감독이 제시한 한국형 전술은 강한 압박과 점유율 축구,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조별리그 1무2패였다. 홍명보식 한국형 전술은 이번 월드컵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축구는 급변하는 세계축구의 흐름에 맞는 전술을 개발해야 4년 후 러시아월드컵에서 재도약할 수 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4강 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이었다. 당시 한국은 공수 간격을 좁혀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했고, 공을 빼앗기면 곧바로 수비로 전환하는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런 전술은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까지 이어지며 한국축구의 장점이 됐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에선 한국축구의 이런 장점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은 특유의 투혼을 잃어버린 채 상대에게 끌려다니는 경기를 했다. H조 상대국들은 한국의 4-2-3-1 전술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축구가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축구는 브라질월드컵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준 팀들의 전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와 칠레는 나란히 3-5-2 전술로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4-2-3-1 전술을 고수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꺾었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코스타리카는 탄탄한 조직력과 ‘5백’을 중심으로 한 ‘선수비-후역습’ 전술로 강호 우루과이(3대 1 승)와 이탈리아(1대 0 승)를 연파하고 16강에 오른 데 이어 8강까지 진출했다.

이들 국가는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는 한편 상대의 단점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전술로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유행했던 투톱 대신 스리톱(3-4-3) 전술로 4강이라는 신화를 썼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전술을 도입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한국축구가 러시아월드컵에서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분야별 전문가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홍명보호는 국내에서 마땅한 전력 분석 전문가를 찾지 못해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에게 H조 상대국들에 대한 분석을 맡겼다. 그러나 두 샤트니에 코치의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꼭 잡아야 했던 알제리에 대한 분석은 실망스러웠다.

협회는 정보전을 위해 브라질월드컵 기간에 ‘테크니컬 스터디 그룹(TSG)’을 운용했다. 기술위원 3명과 협회 기술교육담당관 1명, 지도자 강사 1명, 축구인 1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된 TSG는 3개 그룹(2명씩)으로 나뉘어 활동했는데 이들의 역할도 역시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한국축구는 선수들의 체력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했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를 대신할 인물도 발굴해야 한다.

김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