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0) 콜롬비아의 애틋한 남매

입력 2014-07-05 02:28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산길을 돌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은 천리 밖이었다. 뭘 잘못 먹었는지 대장의 융털이 곤두섰다. 내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심장이 뛰었다. 2008년 콜롬비아 산골짜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에 당도했을 때 나는 경찰서를 찾아 하룻밤 잠자리를 부탁했다.

“안 됩니다. 언제 게릴라 총격이 가해질지 몰라요. 우리도 긴장하고 지내거든요.”

경찰서 주변은 참호로 둘러싸여 있었다. 작은 마을 주변으로 심심찮게 반정부군 게릴라나 버스 강도가 경찰서를 침입한다고 했다.

마침 작은 오토바이를 몰던 한 남자가 경찰서 앞을 지나다 멈춰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다. 눈썹을 치켜든 그는 자기 집으로 가서 쉬란다. 그가 권유하는 사이 어린 남매가 다가왔다. 남자에게 팔짱을 낀 녀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어서 제 집에 가자고 걸음을 부추겼다. 앙상한 전구 필라멘트로 간신히 조도를 유지하는 구리텁텁한 방에 들어섰다. 천사도 흠모할 만한 미소를 가진 앳된 소녀 엘리자베스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남동생 안토니오는 까불까불했다.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장난을 받아주다가도 점잖게 타일렀다. 그러나 낯선 손님의 방문에 들뜬 녀석은 놀아달라고 양냥양냥거렸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누나는 그런 동생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말릴 뿐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고 있었다. 동이 튼 다음에야 돌아온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깬 엘리자베스는 조막만한 손으로 아침을 차려 주었다. 안토니오는 여전히 한악스레 나를 괴롭혔다. 녀석은 뜬금없이 내게 어설픈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방팔방 어지럽게 돌아다니다 별안간 멈칫 서서 “디아블로!”하며 댁대구루루 고함을 질러댔다.

식사 후 엘리자베스는 약 한 봉지를 열어 동생의 입에 털어넣어 주었다. 열 살이나 되었음에도 안토니오는 몸을 배배 꼬며 약 먹는 것을 싫어했다. 약을 먹은 후 녀석은 의자에 털썩 앉더니 잠시 동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곤 침묵했다. 실내는 급격히 평온을 되찾았다.

엘리자베스는 힘없이 얘기를 꺼냈다.

“정신병이에요. 가끔 악마가 보인대요. 그래서 디아블로라고 외쳐요. 행동이 제어가 되지 않고, 모든 환경이 자기중심적으로 맞춰져야 되거든요. 사랑이 필요한 아이예요.”

안토니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매에게 어머니의 자리는 없었다.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당구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고백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술 대신 당구로 마음을 달래거든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에요. 미안하죠. 더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외출할 적마다 동생을 먹이고, 씻기고, 깨끗하게 옷을 입혔다. 가없는 누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이 널 축복하실 거야.”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아침 식사 후 시간이 되어 떠나는 나를 향해 안토니오는 배꼽이 드러나게 힘껏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개구쟁이 열 살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작별 인사 후 한번씩 고개 돌려 점점 묘원해지는 남매를 보며 안토니오의 겉모습에만 치중한 나의 판단은 매우 어리석었다고, 여전히 이해와 사랑으로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질 수는 없겠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면서 산마루에 흐르는 바람에 덕지덕지 불결하게 붙은 내 부끄러움을 씻어내려 힘껏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주님, 저 남매를 지켜주시기를.”

“이에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요 11:3)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