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신국원] 패거리 문화의 해악

입력 2014-07-04 03:03

실망이 크긴 컸나 봅니다. 월드컵 16강이 좌절되자 대표팀을 향한 질타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터져서 국민적 사기가 땅에 떨어진 때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축구라도 위로가 되길 바랐는데 그마저 뜻대로 되질 않아 더 화가 났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터트려야 할 분노가 축구대표팀을 향해 폭발하는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열심히 뛴 선수들이 경기 끝에 허탈해 하는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습니다. 밤샘 응원으로 지친 채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 표정은 더욱 안돼 보였습니다. 경기야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안일, 무책임, 무능일 경우 이야기가 다릅니다. 더욱이 ‘의리축구’나 ‘파벌’이 패인으로 거론되면서 “협회가 경기를 말아먹었다” 같은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포츠의 본질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심 없이 즐기는 놀이입니다. 돈이나 명예, 심지어는 국위선양과 같은 명분도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상업성이 순수해야 할 스포츠를 망쳐놓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파벌 싸움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축구연맹의 파벌 싸움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그에 대한 우려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를 바로 잡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동계올림픽 후에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체육계의 파벌을 청산해야 한다고 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빙상과 축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원로 언론인 김상훈은 ‘패거리문화의 해악’이란 글에서 패거리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습니다. “끼리끼리 뭉치고 봐주는 원시부족시대의 부정적 의식구조인 패거리가 무소불위로 날뛰는 통에 혼란, 무질서,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한탄합니다. 패거리문화의 가장 큰 해악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입장벽을 높이는 폐쇄성과 배타성입니다. 패거리문화는 양날 달린 검으로 작용합니다. 수혜자가 되기도 하지만 상황이 뒤집히면 불이익도 당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국위선양에 봉사한 훌륭한 선수요, 감독이 패거리문화에 휘말려 몰락의 위기에 처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 패거리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또 파벌이 모두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래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기적 배타성을 띠게 되면 예외 없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뻔히 잘못된 일도 서로 정당화하며 상호 강화작용을 통해 뻔뻔해지기까지 합니다. 패거리 안에선 획일성이 강요되고 대화 대신 명령과 복종이 체계로 정립돼 다양성과 창조성을 말살시킵니다. 패거리문화가 가장 자유롭고 순수해야 할 놀이요 페어플레이의 모델이 되어야 할 스포츠까지 지배한다면 심각하게 병든 사회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의 이런 모습 앞에 신앙인들도 깨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도(聖徒)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본받지 않고 그것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자입니다. 패거리와 파벌이 판을 칠수록 복음으로 모든 벽을 넘어서는 화해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부터 매사에 공정해서 패거리문화를 극복하는 일에 앞서는 샬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