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58)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정의 폭이 종전보다 커질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대형 토건사업이나 전시성 행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는 일이 없다는 얘기가 다시는 안 나오도록 이제는 드러나는 시정을 펼 것이란 뉘앙스였다. 다만 서울시장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말로 일축했다.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른 데 대해서도 손사래를 치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최근 시울시청 시장실에서 1시간 동안 그를 만났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등산 가고 싶은데 시간이 잘 안 된다. 원래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었는데 시장이 되면서 차츰 못 쉬게 됐다. 여유가 있어야 크고 제대로 된 결정도 할 수 있다. 조만간 간부들과 지리산을 가볼까 한다. 1박2일 정도로 하룻밤은 산에서 자고. 지리산 종주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리산 종주를 한 지 2년 정도 됐다. 지리산 종주만 20∼30번 했다. 시장 선거에 처음 나오기 직전 백두대간을 49일간 종주하고 내려왔다. 우리 산이 정말 좋다. 그중 지리산이 가장 좋더라. 웅장하고 장대하다. 산에 여러 사람과 같이 가긴 해도 실제로는 하루 종일 혼자 생각하고 성찰하고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성찰의 시간, 명상의 시간, 힐링의 시간이다. 자기 삶을 통째로 돌아본다.”
-부인과 같이 지리산 종주를 해 봤나.
“집사람이 지리산 다람쥐란 별명을 갖고 있다. 한때 종주를 함께 많이 다니다가 나 대신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나는 산에 다니고 집사람이 일했다. 집사람은 늘 걸어 다니니까 산을 잘 탔다. 집사람은 내가 사법연수원을 나와 대구에서 판사와 검사 시보를 할 때 만났다. 집사람은 당시 대구에서 대학 4학년이었다. 연수원 동기생이 소개해줘서 만나자마자 눈이 맞아서 3개월 만에 결혼했다.”
-정몽준 의원과 만났는데 앙금이 풀렸나.
“정 의원은 시민운동을 하고 변호사를 할 때 이미 알았다. 서로 좋은 인상도 갖고 있었다. 등산도 같이 하고, 목욕탕도 같이 가고, 축구도 같이 하고. 어느 언론사가 주최한 행사에서 같이 축구를 했는데 축구는 확실히 나보다 훨씬 잘하더라. 정 의원이 공을 몰고 오기에 뺏으려고 했는데 못 뺏었다. 그런 좋은 관계와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선거를 치르면서 감정이…. 정 선배님이 시청으로 찾아오셔서 정말 고마웠다.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지만 오시는 것도 용기잖나. 선거 때 있었던 앙금은 완전히 다 풀렸고 앞으로 선후배로 잘 지내려 한다. 정 의원 본인에 대해 한 소송은 없다. 지방선거 막바지 내 아내가 구원파 신도였다는 식의 근거가 없는 소문을 퍼뜨린 데 대해서는 당직자 등을 고소해 놓은 게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지방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이 박 시장의 먼 장래를 보고 밀어줬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충남 안희정 지사는 본인이 다음 단계 대권후보로도 생각한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했다. 그런데 나는 서울시장 후보로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서울시장으로서의 안정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겠다고 얘기했다. 시민들이 나를 서울시장 그 이상으로 평가하셨다기보다는 서울시장 직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해왔고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신뢰에서 선택해 줬다고 생각한다.”
-세세한 일은 많이 하는데 큰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2년8개월 내에 큰 비전을 만들어내라고 하면 성급한 거다. 섣달그믐에 시집온 며느리를 그 다음해 정월초하루에 애 안 낳았다고 쫓아내는 것이다. 행정의 연속성이 중요한데 자치단체장이나 대통령은 4∼5년 안에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고 그래서 무리하게 된다. 쾰른 대성당은 300년 공사를 했고 가우디 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다. 서둘지 말자는 거다. 그동안 새로운 서울의 미래를 위한 구상, 설계,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시기였다. 이제는 좀 더 드러나게 될 것이다. 미래 글로벌 도시로서의 서울을 만들어 내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당과 의견 차이가 있거나 조율이 잘 안 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서로가 이견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견이 없는 것은 굳은 사회다. 이견과 갈등은 늘 존재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그것은 늘 경청하고, 소통하고, 조정하면 될 일이다. 시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직무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갈등 조정자로서의 위치다. 이념 간, 세대 간, 지역 간, 빈부 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여당 소속 다른 자치단체장과의 조율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정파적 이익보다는 시민들의 이익, 국민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중앙정부 중심으로 돼 있다. 안전행정부의 경우 일본 자치청처럼 자치를 지원하는 정도의 기능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갈등하기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스타일인가.
“시골출신이고 가난한 농부 집안 출신이다. 그런데 경기고를 나왔고, 서울대는 다니다 말았지만 사법시험 합격하고 검사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부유층 내지는 권력층, 기득권층에 속하게 됐다. 늘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검찰 고위직이나 대기업 사장들이다. 의사 판검사 변호사가 40∼50명은 된다. 또 한편으로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을 하면서 소외된 계층과 가까이 했다. 회색 지대에 있는 것이다. 자연히 양쪽을 이해하고 이을 수 있는 삶의 궤적을 그려왔다. 중간자적 입장에서 양쪽을 이해하면서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결정을 하게 만들어 주는 동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청출어람처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대표를 추월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믿고 사나. 선거과정에서도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인데 그런 것을 누가 중요하게 생각하겠나. 나는 서울시장으로서, 안 대표는 당대표로서 협력의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번 만나서 언론이 자꾸 우리를 경쟁관계로 놓으려 하는데 그런 것 때문에 서로 맘 상하지 말자고 말씀드렸다. 안 대표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안철수연구소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를 많이 했고 행사도 자주 했다. 내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의할 때 안 대표가 박사과정으로 왔다. 나중에 내가 운영했던 여러 가지 강좌의 강사로도 오고 아름다운재단 이사까지 했다. 포스코에서 사외이사를 2년간 같이 했다. 그러니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지 아무한테나 양보하나(웃음). 대선 얘기가 나오는데 민선 6기 시장으로서 이제 막 취임했다. 선거를 통해서 시민들이 원한 것은 서울시장으로서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신종수 사회2부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다
입력 2014-07-04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