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0시 요란한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날씨 애플리케이션을 보니 서울은 비가 올 듯 흐리단다. 오후 7시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미룰까 고민에 빠졌다. “어제 소개팅은 괜찮았냐”는 친구의 ‘라인’(네이버의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에 “나쁘지 않았다”고 답하곤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뭘 먹지?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매거진캐스트의 푸드·레시피 항목을 살피다가 두부상추무침을 선택했다. 두부, 상추, 양파와 양념장을 꺼내 요깃거리를 완성했다. 다른 메뉴에서 맛집을 검색해 친구들과 개설한 ‘밴드’(네이버의 모바일 커뮤니티 서비스)에 공유했다.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의 네이버 앱 메인화면에 걸린 뉴스도 하나씩 골라 읽었다.
나는야 네이버리안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을 열었다. 네이버 클리너가 '악성코드를 검사하겠다'고 한다. 클리너가 열심히 노트북 상태를 체크하는 동안 전날 밤에 온 친구의 청첩장 이메일을 네이버 문서뷰어로 열어본 뒤 N드라이브(네이버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저장했다.
네이버 영화의 인디극장 코너에서 영화 몇 편을 둘러보다 결국 최신 영화를 내려받기로 했다. N스토어(네이버의 디지털 콘텐츠 마켓)에 접속하자 극장에서 내려진 영화 '논스톱'이 등록돼 있다. 미리 충전해둔 네이버 캐시로 4000원을 지불하고 영화를 다운받았다.
영화가 다운되는 동안 지식쇼핑에서 눈여겨봤던 샌들을 검색했다. 15만원짜리 샌들을 12만원에 파는 곳을 찾아 덥석 결제를 마쳤다. 휴대전화에 깔린 네이버 가계부가 결제 문자를 자동으로 인식해 지출 내역을 입력했다. 막간을 이용해 네이버 메인에 올라온 부동산 코너 '둘이 살아도 넉넉, 투룸 월세'를 클릭해 본다. 마침 전세 계약이 곧 끝나는데 유용한 정보들이 꽤 있다.
다운로드가 끝나고 파일을 더블클릭하자 네이버 미디어 플레이어가 켜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 중간에 가물가물한 영어 단어들은 네이버 사전을 띄워 뜻을 확인한다. 영화가 끝난 후엔 메인 페이지에 소개된 신간 도서를 훑어보다 두 권을 '찜하기'로 저장했다. 이어 '열린연단' 탭에서 문화를 주제로 펼쳐졌던 지난 강연 몇 편을 살펴보다 윤정로 교수의 '과학 기술의 공적 의의' 강연에 끌려 수강신청을 마쳤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올 무렵 집을 나섰다. 네이버 뮤직으로 음악을 들으며 약속장소를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해 빠른 대중교통편을 확인했다. 버스에 타서는 웹소설과 웹툰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지만 이내 밀린 웹툰을 보기로 마음먹고 휴대전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네이버의 각종 서비스를 즐겨 이용하는 20, 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취재해 재구성한 하루 일과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네이버리안'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콘텐츠계의 열다섯 살 공룡
의식주와 여가생활부터 학습, 가치판단까지 모두 네이버로 시작해 네이버로 마칠 수 있는 시대. 국민의 절반 이상인 3700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네이버는 말 그대로 거대 공룡이다.
1999년 6월 검색 기능에 충실한 포털 사이트로 출발한 네이버는 2002년 10월 출시된 네이버 지식iN을 통해 획기적 성장을 이뤘다. 이용자들이 직접 참여해 지식을 공유한다는 신개념 서비스에 한때 하루에만 1300여건의 질문과 2800여건의 답변이 달렸다.
네이버는 점점 세를 불려 검색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점적 위치를 구축했다. 검색창이 '초록색 네모'로 대변되는 시기를 맞았고 "네이버에 물어봐"란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검색 장악력을 바탕으로 서비스 영역도 슬금슬금 확장했다. 기획력과 아이디어, 막강한 자본을 통해 서비스 영역을 넓혔고 검색 점유율로 확보한 수많은 이용자가 힘을 보태줬다. 열다섯 살이 된 지금 네이버는 관여하지 않는 영역을 찾기 어려운 독점적 서비스 공급자가 됐다.
네이버리안들은 이전에 상상할 수 없던 방식으로 다양한 콘텐츠에 다가갈 수 있다. 알지 못했던 인디밴드를 소개받기도 하고(온스테이지), 학술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물론(전문정보), '알바니아어' 단어까지 검색할 수 있다(사전). 국내 최초로 마련된 공익 포털 '해피빈'을 통해 기부도 한다. 2005년 이후 누적 기부액만 420억원에 달한다.
네이버 스스로 "명확하게 집계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많은 서비스는 정리된 것만 106가지나 된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모바일 사업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앱스토어에 총 30개 앱을 올려놨고 애플 앱스토어에선 67개 앱을 서비스한다.
다른 다국적 포털에선 상상할 수 없는 '한국형 포털'의 현주소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털 본연의 기능은 원하는 정보를 찾아가기 위해 거치는 관문이지만 네이버로 대표되는 한국형 포털은 직접 콘텐츠를 제시한다"며 "포털은 거대한 데이터 플랫폼으로 변형됐다"고 설명했다.
출발역이자 종착역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네이버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가던 능동적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네이버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했다. 관문에 불과했던 네이버가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최 교수는 이를 기차역으로 비유한다. 초기에 네이버라는 역은 다른 서비스 역으로 가기 위한 출발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네이버는 그 자체로 출발역이자 종착역이 돼버렸다. 기존의 다른 서비스 역들을 자신의 역(플랫폼) 안으로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서비스 역으로 출발하는 기차는 줄어들었고 이용자들은 네이버 역에 계속 머문다. 최 교수는 "네이버는 다른 서비스로의 이동이 필요 없다"며 "네이버란 기차역에는 다른 곳에선 팔지 않는 자판기가 설치돼 있어 이용자들을 붙잡아 놓는다"고 설명했다.
올 4월 기준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은 73.8%다. 네티즌 대부분은 네이버에서 무언가 검색하고 그 결과를 찾아간다. 한번 찾아들어간 네이버역은 승객이 역 밖으로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많은 자판기들이 승객을 유인한다. 나중에 보려고 찜해둔 두 권의 책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네이버 도서 메인 페이지에 올려놨는지는 알 수 없다. 아침에 본 뉴스가 왜 큼지막한 글씨로 사회 뉴스의 상단을 차지하는지 알 방법도 없다.
많은 네이버리안은 네이버의 폐쇄적 플랫폼의 통제된 정보 속에서 그것이 전부인양 헤엄치고 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네이버가 제공하는 정보나 서비스의 다양성은 실제로 통제된 다양성"이라고 꼬집으며 "이는 독과점 포털이 갖는 힘으로 네이버 안에서 한번 가공된 서비스들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생태계를 어이하리오
블랙홀처럼 콘텐츠들을 빨아들이는 네이버는 인터넷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 네이버라는 역에 들어가면 살고 그 밖에 머무르면 자연 도태되는 현상이 공공연해졌다.
지난해 1월 네이버가 웹 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중소 규모의 웹 소설 제공업체들은 한바탕 초상을 치렀다. 작가들이 한꺼번에 업체를 떠났기 때문이다. 인기 작가들은 작품을 더 많은 독자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네이버로 이탈했다. 네이버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탓에 업체들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네이버는 '웹 소설'이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생김으로써 상생한다는 입장이다.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월 웹 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웹 소설을 찾는 독자가 많아졌고 그 층도 넓어졌다"며 "웹툰 서비스도 죽어가는 만화시장에 활력이 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네이버 웹툰의 등장으로 기존 웹툰 업체들과 동네 만화방이 망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네이버는 검색 지배력을 바탕으로 자사 서비스나 콘텐츠를 먼저 노출시켜 개별적으로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작가들을 검색에서 소외시킨다"고 비판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네이버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쇄신에 나섰다. '네이버 문화콘텐츠 펀드'를 조성하고 500억원 기금을 출연해 콘텐츠 제작과 국내 웹툰의 글로벌 진출 지원을 시작했다. 지난 2월에는 상생협력기구 설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하고 중소상공인 희망재단을 설립했다.
'다음카카오' 체제가 출범하면서 포털 생태계에도 대격변이 벌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면서 2∼3년 안에는 양강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털 환경의 변화로 기존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겠지만 한국형 포털에서 비롯되는 명암은 지속되리란 비관적 견해도 있다.
최 교수는 "설사 네이버가 무너진다 해도 권력의 주체가 다른 포털로 옮겨갈 뿐"이라며 "네이버 독점시대에 드러났던 여러 장단점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거대 인터넷 포털 사업자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정의해 사전에 규제하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은 지난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수민 황인호 기자 suminism@kmib.co.kr
[Cover Story 열다섯 살 ‘포털공룡’ 네이버] ‘IT 생태계 포식자’ 일상을 지배하다
입력 2014-07-05 03:41 수정 2014-07-05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