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나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근래 부쩍 늘었다. 주말이면 김수근이 지은 경동교회라든가 새로 건축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국적 문화의 집결지인 이태원이나 한옥이 즐비한 북촌 같은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도시와 그 도시의 역사가 조성한 특정한 건물이나 공간은 열렬한 순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도시여행이나 건축기행, 도시인문학이니 문화지리학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르가 등장했고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새 싫증이 나버린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정형화된 이야기, 지나치게 매끈한 접근성, 안일한 체험방식 등이 지루해졌다는 것일까.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허가되지 않은 광경, 금지된 공간, 역사가나 평론가들이 써놓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유럽과 북미, 호주, 일본, 러시아 등에서 출현한 ‘도시탐험(UE)’이라는 현상이다. 도시탐험가들은 기행이나 답사, 순례의 경계를 과감히 넘어선다. 미지, 미답, 미발견의 공간을 욕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예외 없이 ‘접근금지’ ‘사유지’ ‘위험’ ‘보호구역’이라는 붉은 글씨가 붙어 있다.
금지된 곳을 간다
‘도시해킹’이란 책은 미국의 도시인류학자 브래들리 개럿이 영국의 도시탐험그룹과 함께 세계를 돌며 경험한 도시탐험기이면서 도시탐험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광범위하게 탐구하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개럿은 혼자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더 샤드(The Shard)’에 올랐고 이것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책은 믿어지지 않는 모험담으로 가득하다.
“그날 밤 번개가 느릿느릿 미시간 호를 내려치는 가운데, 구름과 푸른 번개에 둘러싸인 채 건물 끝 지지대 위, 폭풍 가운데에 서서 찍었던 사진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놓은 것이었다.”
미국 시카고시 힐튼호텔 옥상에 기어 올라간 뒤 남긴 기록이다. 스코틀랜드의 거대하고 오래된 철교에 침입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포트레인브리지는 1882년에 건설된 철교다. 에펠탑 열 개 분량에 달하는 강철을 사용해서 지었고 포스 만(灣)을 가로질러 2500m나 뻗어있으며,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다. 국철 재산에 무단 침입한다는 부담을 안고 걷기엔 정말 먼 거리였다. 그야말로 정신 나간 계획이었지만 모두들 매료되었다.”
도시탐험가들은 초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서고, 30m짜리 수직갱도를 내려가 지하 역사의 터널로 내려간다. 강 중간에 정박하고 있는 폐기된 잠수함, 폐쇄된 발전소, 문 닫은 호텔이나 정신병원, 붕괴해 가는 쇼핑몰, 다리나 철로, 지하의 하수구나 무덤 등도 탐험 대상이다.
이들은 경비원을 따돌리고, 철조망을 뛰어넘고, 자물쇠를 따고, 개에게 쫓겨 다니고, 폐건물에서 쪽잠을 잔다. 또 경찰에 쫓기고, 소송에 시달리고, 사고로 생명을 잃기도 한다. 반사회적 집단, 불법 침입자들, 기괴한 취향의 소유자들이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모험가, 혹은 역사가
“안전하며 이용하기 적절하다고 규정된 얄팍하고 메마른 공간에서 그저 얌전히 뒹굴고 있어야 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저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누가 정했어요?”
도시탐험은 이런 질문들로부터 시작됐다. 스톡홀름의 도시탐험대 ‘UE킹즈’는 잠입한 하수도를 배경으로 ‘선택은 당신의 것’이라는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 이 동영상에서 이들은 말한다.
“언제까지나 그 어항 같은 지상 감옥에서 살고 싶어? 아니라면, 이곳 맨홀 아래로 내려와!”
도시탐험으로 이끄는 감정은 평범하고 안전한 삶의 권태일 수 있다. 또 금지된 행동을 감행하는데서 오는 쾌감일 수도 있고, 감시사회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저자는 다양한 도시탐험가들을 등장시켜서 도시탐험의 여러 측면들을 골고루 비춰주면서도 대안적 내러티브라는 측면을 인상적으로 강조한다. 이 무모한 모험가들을 금지된 공간과 은폐된 풍경에 대한 기록자, 전달자, 또는 역사가로서 조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정신병원과 같은 장소들이 공식적인 기록을 거의, 또는 아예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경우 도시탐험가들의 기록은 거의 유일한 역사가 된다.”
어떤 탐험가는 철거된 병원에 대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무단침입을 통해 찍은 사진들을 게시하는데, 이 병원의 과거 직원들과 환자들, 주민들은 이 병원을 둘러싼 자신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공식적 역사가 존재한다. 도시탐험가들이 이곳 주변에 구축해놓은 구전과 민담은 이 역사에 또 다른 층위를 보탠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이야기를 찾아… 금지된 곳만 드나드는 침입자들
입력 2014-07-04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