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너머 캐나다에서 한국을 찾아온 가족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넘쳐났다. 전날 15시간이나 비행기를 탄 데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았지만 피곤함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이 더 커 보였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뿌리'를 확인시켜 주고픈 마음에 들떠 있었고, 아이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지난 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2014 한·캐나다 입양가족 모국방문 행사’ 환영만찬이 열렸다. 캐나다한인양자회(KCCA)와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InKAS)가 공동 주최한 행사로 2001년부터 시작돼 올해가 여섯 번째다. 이 자리에는 한국인 아이를 입양해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열 가족(40명)이 초청됐다. 오는 12일까지 서울과 경주, 제주의 전통명소와 파주 임진각 통일전망대, 삼성전자 등을 둘러본 뒤 13일 출국할 예정이다.
가족들이 첫날 간 곳은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일대, 남대문시장이었다. 행사를 총괄한 KCCA 부회장 김만홍 목사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데이비드 워젝(49)씨는 “북촌한옥마을의 서당 체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해 보니 아들 앤드루(8)를 입양한 것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음식도 ‘입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감격했다.
행사에 참가한 아이들은 7∼14세로 사춘기를 앞두고 있거나 막 들어선 상태다. 부모들은 ‘질풍노도’ 시기에 문화적 갈등까지 겹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들이 모국방문 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테레사 황(53·여)씨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다”며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국계 남편을 둔 황씨는 딸 크리스티나(10)와 아들 패트릭(8)을 각각 생후 6개월과 4개월 때 입양했다.
만찬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도 참석해 격려메시지를 전했다. 정 전 총리는 “13세 때 캐나다 출신의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라며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도 스코필드 박사에게서 삶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및 의사로 정 전 총리가 친아버지처럼 대했던 인물이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부모들은 주최단체와 함께 매주 한글학교를 열어 우리말을 익히기도 했다. 아이들도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일정에는 K팝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상파의 음악프로그램 리허설을 참관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리사 그레이엄(49·여)씨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라며 “캐나다에서 열 가족이 왔지만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으니 마치 한 가족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난 한국인”… 태평양 건너와 ‘뿌리’ 찾았어요
입력 2014-07-03 02:15 수정 2014-07-03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