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S사는 2년 전 휴대전화 비상호출 알림 서비스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상품화하기 위해 대기업인 L사에 기술 관련 서류를 제출했지만 기다리라는 답변만 받았다. 이후 L사는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출시했다. L사는 이후 이 기술을 자기들이 개발했다며 S사에 기술권리를 공동으로 할 것을 요구했다. S사는 L사를 특허법 위반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패소했고, 이 여파로 자금난 타개를 위한 사옥매각, 핵심인력 이직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중소기업 10곳 중 1곳은 기술유출 피해를 보고 있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지난 1월 ‘중기 기술보호 수준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기술 유출을 경험한 중소기업은 10.2%에 달했다. 건당 기술유출 피해금액도 2009년 10억2000만원에서 지난해 16억9000만원으로 급증 추세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소기업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실적은 단 1건도 없다. 공정위는 매년 업무계획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행위는 혁신을 저해하는 불공정 관행이라며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2011년에는 하도급법을 개정해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시 피해금액의 3배를 물어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지만 지금까지는 있으나 마나한 규정이다.
공정위는 신고를 꺼려하는 중소기업을 탓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2일 “중소기업이 공정위에 신고를 한다는 것은 그 업계에서 대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사실상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 신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소극적 조사관행과 대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공정위의 관련 가이드라인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정위가 지금까지 신고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뿐 직권조사 등 적극적인 조사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특히 2011년 제정되고 지난해 1차례 개정된 ‘기술자료 제공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은 대기업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의 정당한 사유 예시를 수십 가지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이 기술 자료를 요구할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입증하면 위법하지 않다’고 규정한 뒤 정당한 사유 예시를 9가지나 들고 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9가지 중 하나를 들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이 지침이 기술 유출의 숱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어 오히려 대기업들이 편법으로 기술을 유출할 수 있도록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예외조항을 3분의 1 이상 없애고 하반기에는 관련 직권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기획] 말로만 엄벌 中企 기술유출 이번엔 손볼까
입력 2014-07-03 02:22 수정 2014-07-0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