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량세태(炎凉世態)란 사람들이 권력 유무만을 기준으로 특정인에게 아첨하거나 푸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인들은 표가 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특정 계층이나 특정 이슈에 ‘올인’한다. 이런 정치인판 염량세태 탓에 빈곤계층을 위한 입법이 미뤄지는 한편에서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2월 말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빈곤층 복지를 확대하는 ‘세 모녀 3법’이 발의됐지만 법안들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예산 문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이들 법안 처리는 미루면서도 ‘표가 되는’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법은 통과시켰다. 여야는 ‘세 모녀 3법’을 기초연금법과 연계해 패키지로 통과시키려 했으나 기초연금 지급이 늦춰질 경우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기초연금법만 별도로 처리했다고 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셈법에 따르면 빈곤층의 목숨보다도 노인들 용돈이 더 중요한가보다.
‘세 모녀 3법’은 긴급지원 범위를 넓히는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국가가 세 모녀 같은 이들을 찾아 도와주는 사회보장수급권자 발굴·지원법 제정안 등이다. 여야의 입장 차이는 예산지원 규모를 얼마나 더 확대할 것인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인 현행 긴급복지지원 기준을 250%로 늘리는 야당 측 개정안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여야 간 적절한 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긴급복지지원 제도가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올해 책정된 긴급복지 예산 499억원이 5월 말에 거의 다 소진됐다고 한다. 우선 이 예산부터 시급히 증액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둘러싸고는 더 복잡하고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와 여당은 정액을 일괄 지급하던 기초생활수급비를 ‘맞춤형 개별급여(생계·의료·주거·교육)’로 바꾸려고 한다. 정부는 이로써 약 37만명이 추가로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29만명가량의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 큰 쟁점인 부양의무제를 둘러싸고는 세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정부·여당안은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높였는데 이 방식으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에 추가되는 경우는 12만명 정도에 그친다. 부양의무제 탓에 사각지대로 몰린 117만명 중 약 10%에 불과하다. 야당 개정안은 현재 부모·자녀·사위·며느리인 부양의무자를 부모·자녀로 축소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해체되고 사라졌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대가족제와 부모부양 전통에 계속 기대겠다고 버티고 있다. 정부예산 규모가 도입당시보다 수백 배 커진 지금 부양의무제는 시대착오인 만큼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중장기적 대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세 모녀 3법 쟁점에 대한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사설] ‘송파 세 모녀 사건’ 4개월, 후속대책은 없었다
입력 2014-07-03 02:17 수정 2014-07-0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