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 가즈요(45·여)씨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1998년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사토씨는 예전부터 빵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빵 굽는 일을 할 기회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동안은 두 아이를 키우며 관광안내원, 학원강사 등의 일을 했다. 그런데 올 초 지역 다문화지원센터를 통해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일터 ‘베이커리 이음’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토씨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교육과정을 통과했다. 처음으로 빵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2일 “베이커리 이음을 통해 꿈꿔온 일을 하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전북 김제시 금구면에 베이커리 이음이 문을 열었다. 베이커리 이음은 삼성그룹이 2012년 설립한 다문화 사회적기업 글로벌투게더김제가 개발한 수익사업이다. 운영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맡았다. 베이커리 이음에서는 우리 쌀과 밀로 만든 빵과 커피 등을 판매한다. 글로벌투게더김제는 베이커리 이음을 열기 위해 지난 3월부터 4개월간 결혼이주여성 8명을 대상으로 제빵사 및 바리스타 양성 교육을 실시했다.
대기업들 사이에서 사회적기업 설립과 지원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수익 창출에 급급하던 대기업들이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기업의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부터다. CSV는 하버드대 경영학과 마이클 유진 포터 교수가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기업이 수익 창출 이후에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재능과 계열사 간 시너지를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더 크다. 삼성의 경우 그룹 계열사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사회적기업을 지원한다. 제일기획은 결혼이주여성 제빵사를 형상화한 로고를 제작하고, 삼성에버랜드에서는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서비스 교육을 실시했다. 호텔신라 제과사들의 제과 교육도 진행된다.
SK그룹은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를 세웠다. 2000년 7월 SK가 50% 이상의 지분을 투자해 만든 ‘엠알오코리아’는 소모성 자재(MRO) 구매대행 회사로 성장했다. 2010년에는 연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다 2011년 8월 “MRO 사업이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최태원 회장의 제안에 따라 사회적기업으로 전환됐다. 연매출 1200억원대의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새로운 모델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MRO 사업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 차원에서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서 대응하기 위해 내린 결단”이라며 “사회적기업 확산의 밀알이 돼 달라”고 말했다.
행복나래는 사회적기업 및 약자기업 우선구매, 사회적기업 육성 및 지원, 취약계층 고용 등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일반 협력사, 사회적기업 협력사, SK 관계사와 함께 지역사회 공헌 활동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행복나래는 2011년 이후 지금까지 50억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사회에 환원했다. 행복나래는 지난 1일 ‘2014 사회적기업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대기업은 기획력, 자금력 등의 역량을 바탕으로 뜻있는 청년기업가들의 사회적기업 창업을 지원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60개의 사회적기업을 배출했다. 사회적기업가 양성 프로젝트 ‘H-온드림 오디션’을 통해서다. H-온드림 오디션은 현대차그룹과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고용노동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함께 청년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환경·교육·복지 등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진행 중인 맞춤형 창업지원 사업이다. 매년 30개팀씩 5년간 150개팀을 선발해 창업교육·컨설팅을 실시하고 팀당 최대 1억50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룹 관계자는 “창업에 성공한 팀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는 선순환의 창조경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류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가치를 담는 그릇 사회적기업] “빵집 운영 꿈… 기업 도움 없었다면 꿈도 못꿨죠”
입력 2014-07-03 02:29 수정 2014-07-0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