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부모들은 수험생 자녀에게 엿을 선물한다. 철썩 붙으라는 기원의 뜻도 있지만 여기엔 그보다 더 깊은 과학이 숨어있다. 미래를 좌우할 큰 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심하면 복통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엿이 스트레스성 복통을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엿은 당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뇌 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어른들이 시험 전에 엿을 먹으라고 하는 까닭이다.
중국 전통약물총서 ‘중약대사전’에 엿의 효능이 기록돼 있다. “비위의 기를 완화하고 원기를 회복하며 진액을 생성하고 속을 촉촉이 한다.” 예부터 동양에선 엿을 당분과 칼로리를 공급하는 최고의 음식으로 여겼고 한의학 처방에도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는 고려 고종 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처음 등장한다. 바로 ‘행당맥락(杏?麥酪)’이다.
엿 때문에 사회가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1964년 12월 실시된 중학교 입학시험 3교시 자연, 엿을 만드는 순서에 관한 18번 문제가 사달이 됐다.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묻는 4지 선다형 문제였다. 출제자가 요구한 정답은 녹말 분해효소 디아스타제(diastase)였는데 다른 보기로 제시된 무즙도 정답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는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한 문제로 아들의 경기중 입학이 좌절된 학부모들은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교육감을 찾아가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하라고 따졌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만든 엿 좀 먹어보라”며 시위를 벌였다.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한 끝에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됐지만 이때부터 ‘엿 먹어라’가 욕의 대명사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남사당패 사이에서 ‘엿 먹어’가 욕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남사당패는 엿을 여성의 신체 일부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했다.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인천공항에서 엿 세례를 받았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에 0대 1로 진 이탈리아 대표팀은 토마토 세례를 받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웃을 일 없는 국민들에게 기쁨과 환희를 줄 것으로 믿었던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의 표시로 엿사탕을 던진 걸로 짐작된다. 최선을 다한 대표팀 입장에선 서운할 수도 있겠으나 4년 뒤 러시아월드컵의 선전을 바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엿
입력 2014-07-03 02:10 수정 2014-07-0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