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바늘구멍 통과 1년… 더는 못 버텨 ㅠㅠ

입력 2014-07-03 02:19 수정 2014-07-03 10:06

취업대란이 상시화된 지 오래입니다. 취업은커녕 서류 통과조차 쉽지 않습니다. 지난 5월 취업 포털 인크루트 조사를 보면 상반기 신입사원 대졸 공채에서 서류전형 평균 경쟁률이 24대 1을 기록했습니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서류 통과자의 10분의 1 정도가 최종 합격하는 것을 감안하면 첫 관문부터 바늘구멍 통과하기입니다. 그렇게 좁은 취업 관문을 넘었지만 입사 후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업대란 속에서도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줄을 잇는 건 왜일까요?

이모(29)씨는 대기업 입사 후 일곱 달 만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첫 부서로 배치 받은 지는 채 다섯 달도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이씨는 당초 지원한 직무와 다른 직무에 배치된 데다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인 것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다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첫 직장이었지만 맡은 업무가 기대와 달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야근에 주말에도 수시로 불려나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마음을 굳혔습니다. 주위에서는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결국 올해 초 사표를 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40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4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씨와 같은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5.2%로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0년 조사에서는 15.7%가 1년 내 퇴사했고, 2012년엔 23.6%가 퇴사한 것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꺾이긴 했지만 상승 추세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입사원 4명 중 1명꼴로 1년이 안돼 회사를 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언제든 떠난다

신입사원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우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거의 사라진 영향이 큽니다. 이는 신입사원만의 변화는 아니고 직장인 상당수가 이직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크게 늘었습니다. 계약직 등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되면서 고용 불안이 상존하는 것도 이직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1일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채용시장의 가장 큰 특징으로 ‘경력직 채용 증가’가 꼽힐 정도로 경력 채용은 보편화돼 있습니다. 경력 채용 보편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됩니다. 고용노동부의 ‘5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보면 5월 사업체 입직자는 56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만명 줄었지만 이직자는 57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 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입사원들은 입사 후라도 더 좋은 조건의 회사가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향은 근무 여건이 좋지 못한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두드러집니다. 실제 경총 조사에서도 중소기업 대졸 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31.6%로 대기업(11.3%)보다 3배 가까이 높았습니다. 퇴사 사유로 제시된 ‘급여 및 복리후생 불만’ 비율 역시 중소기업이 27.9%인 반면 대기업은 16.1%였습니다. 대기업 역시 2012년 조사 때는 급여 및 복리후생 불만 비율이 9.4%였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두 자릿수로 높아졌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계속되는 취업난이 퇴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대기업 인사 부서 관계자는 “구직 기간이 길어질 경우 취업에 불리할 수 있어 ‘일단 합격해 경력이라도 쌓자’는 생각으로 취업했다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부적응은 잘못된 조직문화 탓?

최근 신입사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만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2007년 5월 삼성물산 입사 1년차 신입사원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사직서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사원은 그 글에서 회사에서 겪었던 불합리한 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전부 다 가기 싫은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 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 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 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7년 전 글이지만 비슷한 내용의 비판은 최근에도 반복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국내 기업에서 근무했던 호주인 마이클 코켄씨는 지난 3월 자신의 블로그에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노동생산성을 기록한 한국, 그 8가지 이유들’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의 기업문화를 꼬집어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글에서 상명하달식 의사소통 방법,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음주와 흡연에 관대한 문화, 야근의 일상화 등을 지적했습니다.

올해 초 대기업 계열사를 다니다 퇴사한 양모(27)씨는 “회사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은 효율성이지만 실제 하는 일은 효율적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나와 일해야 하는데도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털어놨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하는 노동정책연구에 지난해 실린 ‘Y세대의 일과 삶의 균형’ 보고서에선 “1977∼1995년 사이에 태어난 Y세대는 일에서의 가치가 충족되지 못하거나 일과 삶의 균형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낄 때 많은 갈등과 직무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하고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고려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입사원을 잡아라

기업들도 신입사원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채용 이후 교육·훈련 시간과 비용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경총이 35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 교육·훈련 기간은 평균 18.3개월이고 소요 비용은 5959만원이었습니다. 5년 전 같은 조사 때보다 기간이 1.2개월 줄고, 비용도 128만원 감소했지만 회사 입장에선 출혈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 시기도 현업 배치 이전(43.2%), 현업 배치∼능력 발휘 구간 사이(37.0%)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에 따라 영업직 등 특정 직무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착률이 떨어지는 고스펙 지원자들을 걸러내고 있습니다. 충성심이 높은 구직자들을 선별하기 위해 스펙보다 면접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도 합니다. 멘토링 제도 등을 통해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시행하는 회사도 많아졌습니다. 인턴 출신을 선호하는 것도 대학을 바로 졸업한 구직자보다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열린 채용을 통한 수시 채용을 확대하는 것도 공채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기업문화를 바꾸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입사원 스스로도 한번 퇴직하면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취업 포털 커리어 HR사업팀 임지현 과장은 “신입사원 때 퇴사한 뒤 재취업할 때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취업이 훨씬 힘들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