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는 국적불명의 대중문화에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교회는 청소년을 모으기 위해 영어로 찬송을 부르고 예배드리는 곳이 됐습니다. 한때 교회가 문화적 탈출구 역할을 했던 과거보다 더 퇴보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류형선(49) 국립국악원 신임 예술감독은 최근 교회 문화의 변질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악 작곡가인 그는 기독교계에 국악찬송을 처음으로 대중화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1991년 그가 만든 국악찬송 ‘주께서 왕이시라’는 지난해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에서도 불렸다. 60여곡의 국악찬송을 만든 그는 우리 전통 음악에 무관심한 교계를 강하게 질타했다.
“지금 교회는 우리 음악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을 넘어 적대시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서양음악이 한국 땅에 뿌리내리는 데 교회가 거점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과거 선교사들은 우리 전통문화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처음 기독교가 한국 땅에 전해졌을 때 선교사들은 국악 가락에 노랫말만 바꿔 찬송으로 쓸 정도로 전통문화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실제로 민요 ‘아리랑’의 가사를 ‘예수랑 예수랑 예수리요∼’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류 감독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에는 오스트리아 민요, 독일 국가에서 곡을 따온 것도 있다”며 “각국 고유의 민요 가락에 성경 이야기를 넣어 부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류 감독이라고 처음부터 국악찬송에 관심을 보였던 건 아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는 오히려 서양음악에 심취했다. 변화는 졸업 후 시작됐다.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유학을 꼭 가야 하나’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기억되는 음악을 만들려면 오히려 한국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류 감독은 “음악가라면 누구나 본인 음악의 뿌리를 고심하는 ‘음악적 자의식’이 있는데 나의 답은 국악이었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삶의 근간인 신앙과 국악을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한국교회도 문화의 뿌리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목회자가 전통적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교회는 목회자의 문화적 수준과 비전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며 “목회자가 세속의 가치를 좇을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가 가진 가치를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목회자들이 제 아무리 문화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어도 마땅한 성가곡과 합창곡이 없다면 결국 수입 CCM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류 감독의 목표도 더 많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있다. 국악스타일의 성가집 1권을 만들고 앨범으로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는 자신의 성가집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국악찬송이 울리길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희망적인 건 한국교회가 문화적 리더십을 발휘할 자산이 풍부하다는 점이에요. 교회에는 피아노가 있고, 오르간도 있고, 걸출한 음악인이 있죠. 노래를 부르는 문화도 있습니다. 이런 인프라에서 서양음악이 성장했듯이 국악을 기반으로 한 한국문화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악을 듣고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올 겁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인터뷰-류형선 국립국악원 신임 예술감독] “교회가 국적불명 대중문화에 끌려다녀서야…”
입력 2014-07-03 03:07 수정 2014-07-0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