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 “상대방 패 보고 결정” 재보선 공천 미루는 여야

입력 2014-07-02 02:26
새누리당이 1일 국회에서 각각 원내대책회의를 갖고 7·30재보선을 겨냥한 국정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이 조속히 정상화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이 1일 국회에서 각각 원내대책회의를 갖고 7·30재보선을 겨냥한 국정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전 자진사퇴나 지명철회를 공개 촉구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7·30 재·보궐 선거 공천을 앞두고 여의도 정치권의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상대방의 패를 보겠다며 최대한 공천을 미루고 있다. 여당의 과반의석 수성 여부가 걸려 있고, 무려 15곳에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행보가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당들의 눈치작전은 책임정치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마치 선발투수 예고를 미루거나 가짜 선발 라인업으로 상대를 교란시키는 술수처럼 보여 후진적 정치 행태라는 비판이다.

이번 재보선의 승패는 서울과 경기의 6곳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러나 1일까지 새누리당은 한 곳도 공천을 하지 않았고, 새정치연합은 경기 평택을 1곳만 공천을 확정했다. 후보등록일인 오는 10일 직전에야 대진표가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

속내를 살펴보면 벼락치기식 공천의 폐해가 잘 드러난다. 여야가 정치 신인 등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내정해 놓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모양새가 아니다. 거론되는 후보로는 승리를 확신할 수 없거나 당 지도부가 전략공천을 주려 해도 내부 반발이 커 공천 확정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연합 소속 수도권 3선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 모두 미니 총선급 재보선에서조차 미리 준비된 콘셉트나 공천 원칙이 없다”며 “원칙과 기준 없이 상대방의 패만 보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야당의 경우 눈치작전을 펼치면 유권자들에게 당당한 대안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힘들어 더 손해가 될 수 있다.

눈치작전의 끝은 대부분 전략공천으로 이어진다. 계파가 뒤얽힌 고도의 정치적 이해관계, 승리가능성, 상대방 패를 볼 수 있는 시간 확보 등을 고려한 최적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눈치작전과 전략공천은 인재 육성·발굴보다는 인지도가 높은 인물을 낙하산처럼 내리꽂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재보선은 ‘올드보이 혹은 잠룡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치러졌다.

인천대 정치학과 이준한 교수는 “선거에서 이겨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상대방에 맞춘 후보만 내놓는다면 유권자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국회의원은 선거구의 대표를 뽑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에 살아본 적도 없고, 지역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전략공천한다면 대의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 위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전략공천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다. 능력있는 외부 정치 신인을 영입하는 좋은 루트였다. 김영삼·김대중 등 양김이 주름잡던 15·16대 총선에서 여권의 이명박 이회창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야권의 정동영 정세균 김한길 임종석 등이 전략공천 방식으로 영입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은 이후에 전략공천 등 인재 발굴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번 재보선의 경우 눈치작전 끝에 여당이 야당보다 먼저 움직였다. 새누리당은 이준석(29) 전 비대위원을 혁신위원장에 전격 발탁하며 ‘탈박근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중량급 인사인 임태희 전 의원과 이혜훈 전 최고위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서 분위기 반전도 꾀한다. 여야 재보선 공천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전략공천을 둘러싼 내홍에 빠져들고 있다. 당 지도부가 서울 동작을에서 안철수 공동대표 측근인 금태섭 대변인을 전략공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옛 민주당계가 들고 일어섰다. 새정치연합 오영식 서울시당 위원장 등 의원 31명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동작을 전략공천 반대를 요구했다. 자칫 6·4지방선거 당시의 광주 전략공천 후폭풍이 재현될 조짐이다.

엄기영 최승욱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