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

입력 2014-07-02 02:36
장석규 장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는 책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는 외롭지 않다’ 수익금을 뇌종양을 앓는 어린이를 돕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장석규 장로 제공
본격적인 휴가철, 배낭을 꾸릴 계획에 들뜬 이들이 참 많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그러나 단순한 여행보다 묵상과 기도가 있는 순례길을 택하기도 한다.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스페인 산티아고도 좋지만 목적지가 어디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 길은 순례가 될 수 있고, 혹은 관광이 되기도 한다. ‘여름 순례’를 준비하는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이 나왔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나무는 외롭지 않다/장석규 지음/예영커뮤니케이션=경기도 양평 문호교회 장석규 장로는 지난해 9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가는 도보여행)에 오른다. 장장 890㎞. 2007년 초 육군 준장으로 전역한 뒤 무릎 수술을 받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가 산티아고로 향한 건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애타는 아버지의 심정에서 비롯됐다. 뇌종양에 걸린 손자와 어린 아들을 돌보는 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기도하자.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에서 기도의 걸음을 내디뎠다.

걷는 중에 거꾸로 선 하트 모양의 하얀 뭉게구름을 보았다. 잃어버린 시계를 해외 순례객이 찾아줬고, 현지인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았다. 길 위에서 감사와 위로의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응급실에 실려 간 손자 소식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손자의 소식이 궁금해 22㎞를 쉬지 않고 내달리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곤함을 견디며 교회에 들러 딸과 손자를 위해 부르짖었다. 길 위에서의 부르짖음을 책 한 권에 담았다.

하지만 손자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비록 짧은 생애지만 너는 우리에게 참 소중한 씨앗을 뿌리고 갔다. 모든 가족이 힘든 가운데서도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며 힘을 북돋워 줄줄 아는 돈독한 사랑을 실천하도록 해주었다. 이제는 남들이 아파할 때 그들의 아픔을 머리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함께 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저들의 입장에서 저들이 정작 소중히 여기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다.”(219쪽) 순례길 끝에서 만난 건 사랑의 주님이었다.

◇팔레스타인을 걷다/김영봉 지음/IVP=미국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가 쓴 책이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성지에서 길어낸 생명과 평화의 묵상집이다. 성지순례에 관한 여러 책 중 이 책이 눈에 띈 건 순례자의 마음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는 것은 여행이고,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순례라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이다. 두 사람이 똑같이 예루살렘에 가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한 사람은 관광으로 끝나고 다른 사람은 순례를 할 수 있다. 순례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알래스카에 다녀와도 순례가 될 수 있다.”(13쪽)

그래서 김 목사 책에선 시장통 ‘비아 돌로로사’에서조차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이란 뜻의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에게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총독 관저에서 매장된 무덤까지 이르는 길이다. 지금은 1m 남짓한 골목길 양쪽으로 기념품과 음식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상인들이 손님을 끄는 소리로 시끄럽다. 오죽하면 김 목사가 “그 길을 걸으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은 보통의 영적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했을까.

그런데 아쉬운 그 길을 걸으며 김 목사는 깨닫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그 거리를 지나실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유월절 축제를 위해 몰려온 순례객들이 가득했을 것이고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상인들이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헤집고 지나가셨다. 주님은 늘 외로웠다. 그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우리는 복되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는 진정 복되다. 외로운 예수님의 친구인 우리는 참 귀하다.”(156쪽)

저자들에게 길의 시작은 광야였다. 그래서 김 목사는 “진정한 순례는 매일 매일의 삶”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길의 끝에서 만난 건 위로자 예수님이다.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바뀐 건 내 안에,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올여름엔 광야로 나가보자. 그 길의 끝에서 주님을 만나보자.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