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폐쇄 위기에 몰린 천안유기동물보호소] “인간이 다른 동물의 생명 빼앗을 권리 있나요”

입력 2014-07-01 02:08
천안유기동물보호소 이경미 소장이 지난 28일 오후 충남 천안 동남구 보호소 안에서 유기견 백구를 안고 있다. 최근 천안시의 보조금 지원이 끊기면서 이곳의 유기동물 100여 마리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오늘은 콜리가 버려졌네요. 목줄까지 정성스럽게 달아 놓고 버렸어요.” 28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유기동물보호소. 이경미(41·여) 천안유기동물보호소장이 승용차 트렁크를 열자 금빛 갈기가 근사한 대형 콜리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형견이 동네를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두 시간 만이었다.

이 소장의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길에 고양이가 돌아다니는데 배고파하는 것 같다”며 울먹이는 초등학생의 신고였다. 이 소장은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길이 집이니 걱정 말라”며 아이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곧 “사람이 주는 밥을 바로 받아먹으면 ‘길냥이’가 아니라 ‘집냥이’일 가능성이 큰데 유기묘일지도 모르겠다”며 다시 차 시동을 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이 소장의 일상이다.

이 소장이 보호소 문을 연 건 지난해 5월이다. 불과 1년 남짓 흘렀을 뿐인데 보호소는 어느덧 100여 마리의 유기동물로 가득 찼다. 입양 가는 숫자보다 유기되는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호소는 발 디딜 틈도 없다.

천안에는 원래 천안시가 위탁 운영하는 동물보호소가 있었다. 이 소장은 그곳의 자원봉사자였다. 보호소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전염병이 돌아 동물들이 떼로 죽어나갔다. 겨울이 오면 철창 안 동물들은 온몸으로 냉기와 싸워야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이 소장은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낫겠다”며 사비 4000만원을 털어 보호소를 짓기 시작했다. 천안시내에서도 차로 30분을 달려가야 나오는 시골 논밭의 컨테이너 건물을 빌렸다. 철창들을 채워 넣고 사료와 백신도 샀다. 컨테이너 내부는 분홍색으로 칠했다. 천안보호소는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핑크보호소’로 불린다.

동물관리법에 따라 유기동물은 10일간의 공고 이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소유권이 지자체에 귀속돼 안락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씨는 안락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약간의 행정 편의를 위해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소장의 보호소가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자신이 키우던 동물을 ‘버리러’ 온 것이다. 사흘 전에도 누군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서 보호소 문 앞에 두고 갔다. 밤새 쓰레기통에 갇혀 있던 고양이는 이튿날 결국 죽었다. 지난 2월에는 교배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불독과 휘핏, 잉글랜드 쉽독 등 고가의 ‘품종견’ 8마리를 차에 싣고 와 보호소 인근 곳곳에 풀어놓고 갔다. 구조에만 며칠이 걸렸다. 전화를 걸어 와 “안락사를 안 시킨다던데 키우던 동물을 맡기고 싶다”고 대놓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소장은 “이제 보호소 앞에 못 보던 상자만 있어도 가슴이 철렁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안시가 월 600만∼700만원씩 주던 보조금이 올해 들어 끊겼다. 담당 공무원은 “이씨가 서류를 덜 제출했다”고 했다. 시는 이 소장이 안락사를 실시하지 않는 문제도 지적했다. 단독으로 입찰한 천안시 유기동물보호소 위탁운영 공개입찰에서도 떨어졌다. 월세와 전기·수도세, 사료값, 치료비, 구조활동비 등 한 달 보호소 운영에는 1000만원 남짓 들어간다. 이 소장은 “안락사를 안 해서 늘어나는 관리비용은 사비로 메우고 있다”며 “한 달 사료값만 수백만원인데, 시내 동물 구조와 관리는 다 맡기면서 지원은 못해주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천안시 관계자는 “올 초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하면서 다른 동물 사업에 신경을 못 썼다”며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장은 이미 신용불량자 위기에 놓였다. 지금까지 보호소 운영에 들어간 사비만 1억원에 달한다. 이 소장이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자 그의 칠순 노모가 나서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중이다. 곧 보호소를 덮칠 더위도 걱정이다. 그 사이 이 소장의 전화기가 또 울렸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이 방송에 데리고 나와 자랑하던 동물을 맡겨두고 한 달째 연락을 끊었다”는 동물병원 직원의 전화였다.

천안=글·사진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