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세월호와 광우병

입력 2014-07-01 02:16

요즘 정치상황을 지켜보노라면 2008년을 떠올리게 된다. 광우병 파동으로 이명박정권이 휘청대던 때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를 당한 뒤 박근혜정부도 지지율이 40%대로 추락했다. 정홍원 총리 유임 이후 지지율은 더욱 곤두박질치는 양상이다.

이명박정부가 촛불집회에 맞닥뜨린 것은 출범 두 달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대선에서 압승한 정부였지만 초기 내각 인선 등을 둘러싼 논란에 광우병 파동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은 20% 밑으로 떨어졌다. 6·4 재·보궐 선거에서 대패하고 7월 개각으로 국면전환을 꾀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집권 후반기 ‘친서민’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해외 원전 수주 등에 성공하면서 한때 지지율이 50%대로 치솟기도 했지만 ‘촛불 트라우마’에 발목이 잡혀 집권 내내 국정 동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40%대로 추락한 정권 지지율

박근혜정부도 출범 초기 50% 중반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 구성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 데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지지율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과 세월호 참사는 본질에서는 다르다. 대미 쇠고기 협상은 이명박정부에 직접적 책임이 돌아가는 행정행위였다. 세월호 참사는 근본적 책임을 특정 정부에만 돌리기 어려운 사안이다. 수십년, 수백년 쌓인 정치·사회 폐단이 폭발한 성격이 짙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어린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0명 이상이 일시에 희생된 최악의 참사였다. 미처 현실화되지 않은 식탁 안전의 문제요, 주고받는 것이 본질인 통상 협상의 문제였던 광우병 파동과 폭발력이 달랐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태가 정권의 위기로 치달은 데는 공통의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공직사회의 무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가 계속 확산되자 소신을 갖고 책임 있게 대응하는 공무원이 없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세월호 사태 와중에도 정부의 오락가락한 발표와 공직자들의 무능·부패 문제가 정권을 향한 불신으로 증폭됐다.

다른 요인은 소통 문제였다. 쇠고기 재협상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 당시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대통령도 이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위기가 심화됐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발생 다음날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과 30분 이상 얘기를 나눴다. 통곡과 분노가 비등하는 현장을 찾은 모습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꼈고, 깊은 절망 속에서도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소통강화해 국정 고삐 다잡아야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박 대통령은 어린이날 연휴에 다시 진도를 찾았고 대국민 담화를 내놓았지만 원론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 개조를 위한 적임자로 내세운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낙마했지만 국민들 앞에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총리 인선과 개각이 대참사 이후 국가가 나아갈 방향과 직결된 중대사였는데도 대통령의 말은 짧기만 했다. 더 큰 문제는 정 총리 유임 발표였다. 국민들 눈에 약속위반이요, 역주행으로 느껴지는 예민한 상황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의 건조한 발표문 한 장은 미흡했다. 청문회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든, 구인난을 호소하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게 필요했다. 요즘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좋은 일이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호사가 없다면 지도자의 위무라도 있어야 마음을 붙일 수 있다. 대통령은 말을 아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결코 아낄 일이 아니다. 소통에 소홀하다 자칫 국정 장악력을 놓쳐버리는 일은 국가의 불행이다. 반복되면 안 된다.

김의구 정치국제센터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