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서부를 급속히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29일(현지시간) 철두철미한 이슬람 율법에 의해서만 통치되는 나라 '칼리페이트(Caliphate)' 수립을 선포했다.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새 국가는 과거 이슬람 국가의 최고 통치자였던 칼리프(Caliph)가 다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비록 일방적이지만 극단적 이슬람 성전(聖戰)주의자 '지하디스트'들의 오랜 염원인 칼리페이트가 전격적으로 주창된 것이다. 이슬람권 세력 분포에 있어 새로운 궤적이 만들어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칼리프제(制) 지하디스트 국가 탄생?=ISIL은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음성 파일을 통해 칼리페이트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통치 지역은 시리아 북부의 알레포에서 이라크 동쪽의 디얄라에 이른다.
칼리페이트는 영어로 번역하면 'Islamic State'로 이슬람국가를 의미한다. 이들은 특히 이 시각부터 자신들을 ISIL로 부르지 말고, 칼리페이트 또는 이슬람국가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새 국가는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서방의 모든 쓰레기를 배척한다"고 했다.
ISIL은 "새 국가는 칼리프가 통치하고, (ISIL의 기존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3)를 칼리프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새 칼리프의 권한이 미치는 지역에서는 다른 국가나 토후국 등의 합법성이 무효화된다고 주장했다.
알바그다디에 대해선 "전 세계 모든 이슬람교도의 지도자"라며 "이슬람교도는 새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동안 알카에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 그룹을 대변해 왔고 빈라덴 사망 이후 알자와히리가 알카에다의 후계자 역할을 해왔지만 이를 거부하고 앞으로는 자신들이 중심이 되겠다는 얘기다.
브루킹스 도하 연구센터의 찰스 리스터 객원연구원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ISIL의 이슬람국가 선언은 9·11테러 이후 국제적인 지하디스트 운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칼리프 부활 운동 벌어지나=칼리프는 이슬람교 유일신 알라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무함마드의 종교적·정치적 권한을 이어받아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린 최고 통치자다. 무함마드가 632년 사망한 뒤 후계자로 4명의 칼리프가 선출되고부터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가 1924년 칼리프제를 폐지할 때까지 이슬람권에는 다양한 형태의 칼리프 국가가 이어져 왔다.
알카에다 분파로 있다가 지난해 초 독립해 나온 ISIL은 창립 때부터 과거 이슬람 초기 칼리프 국가처럼 지중해 연안부터 걸프지역을 아우르는 범(汎)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전문가들은 ISIL의 칼리프제 이슬람 국가 수립 선포를 계기로 이슬람권의 다른 나라에서도 극단주의 운동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슬람권의 많은 젊은이들이 지하디스트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지역의 왕국들이 인정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은 라마단을 맞아 대국민 연설에서 "일부 테러리스트들이 개인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이슬람을 앞세워 이슬람 신자에게 겁을 주고 있다"면서 "이 같은 테러 단체를 척결하겠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 정부군은 ISIL이 장악한 북부 도시 티크리트를 탈환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구입한 비행기까지 투입하며 연일 격전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자국에서 실시한 연설에서 "이라크 내 쿠르드자치정부가 독립국가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쿠르드족만의 독립국가가 필요하다"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이라크 ISIL “칼리프 통치 이슬람국가 수립” 선포
입력 2014-07-01 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