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사건 그 후] ‘세 모녀 3법’ 어떻게 돼 가나… ‘기초연금법’에 밀려 넉 달 넘게 낮잠

입력 2014-07-02 03:08
성탄절을 1주일 앞둔 2004년 12월 18일. 대구의 한 단칸방 장롱에서 다섯 살 남자아이가 영양실조로 빼빼 말라 숨진 채 발견됐다.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자격 요건이 안돼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다. 아이는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이 죽음을 계기로 정부는 이듬해 긴급복지지원법을 만들었다.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저소득층에 생계비·의료비를 우선 지원하는 제도다.

10년 만인 올 2월 27일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갑작스러운 생활고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시 정치권이 바빠졌다. 빈곤층 복지를 확대하는 ‘세 모녀 3법’이 잇따라 발의됐다. 긴급지원 범위를 넓히는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국가가 세 모녀 같은 이들을 찾아 도와주자는 사회보장수급권자 발굴·지원법 제정안 등이다.

우리나라 빈곤층 복지 제도는 누군가 죽어야 생겨나고 바뀌는 ‘피 묻은 법’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에도 세 모녀의 죽음을 놓고 빈곤층 복지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넉 달이 흐른 지금, 떠들썩했던 그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발 묶인 ‘세 모녀 3법’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대표가 발의한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은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1인 가구 90만5000원, 4인 가구 244만6000원) 이하여야 가능한 긴급지원 기준을 250%까지 확대하는 방안이다. 안철수 대표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현재 부모·자녀·사위·며느리인 ‘부양의무자’를 부모·자녀로 축소했다. 이렇게 되면 돈 버는 사위·며느리가 있어도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이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세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내세웠고 새누리당도 그에 맞서는 법안을 제출했다. 새정치연합의 법안은 ‘예산을 더 많이 쓰자’는 것이고 새누리당은 ‘재정 부담이 크니 돈을 좀 덜 쓰면서 해보자’는 입장이다.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해 세 모녀 3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4월 중순까지 미적지근한 논의가 이뤄지다 세월호 참사 후 올스톱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이 법안들을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기초연금법과 연계해 ‘패키지’로 통과시키려 했다. 기초연금이 그렇게 지연될 경우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이 크다 보니 결국 기초연금법만 분리 통과됐다. 선거에서 ‘표’가 더 많은 기초연금법에 밀리고 세월호·월드컵에 가려 세 모녀 3법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월 개편 예정 기초생활보장제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기초생활보장제 개편안은 일정액을 일괄 지급하던 기초생활수급비를 ‘맞춤형 개별급여(생계·의료·주거·교육)’로 바꾸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법안을 토대로 예산 2000억원을 더 확보해 놨다. 10월부터 시행하기 위해 관련 공무원도 1117명을 미리 뽑았다. 하지만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10월 시행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이렇게 하면 37만명 정도가 더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기존 수급에서 탈락하거나 감액되는 경우가 많아 29만명 정도의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반박한다. 순천향대 허선 교수는 “정부의 개별급여 방안은 엄청나게 넓은 사각지대는 방치한 채 받던 사람들 것을 빼앗아 안 받던 사람들에게 주는 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또 여야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모두 이 제도의 최대 문제로 꼽히는 ‘부양의무제’를 살려뒀다. 기준을 조금 완화하는 데 그쳤다. 정부·여당은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높였는데 이 방식으론 12만명 정도만 구제받는다. 부양의무제 탓에 사각지대로 몰린 117만명 중 약 10%만이 안전망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안철수 대표의 개정안도 부양 의무자를 1촌 직계혈족(부모·자녀)으로 제한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이에 “그럼 사위와 며느리는 부양 의무가 없다는 것이냐. 국민 정서에 배치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연구위원은 “실제로 부양할 수 없는데도 ‘부양능력 있음’이라 판정되고 심지어 부양비를 주고 있다고 간주하는 방식은 아주 잘못됐다.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줄이려면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숨은 빈곤층 발굴, 성과와 한계

이렇게 정부와 정치권이 갑론을박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나섰다. 서울시가 4월부터 구청별로 위기가정발굴추진단을 10여명씩 투입한 결과 3월 3355건이던 복지 지원이 5월 1만965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10월에 끝난다. 서울시 관계자는 “6개월간 20억원이 들어가는데 정규 사업이 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사업을 계속 이어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도봉구의 복지발굴 사업도 눈에 띈다. 지난해 만들어진 ‘쌍문희망복지센터’는 사회복지사·간호사·직업상담사·정신건강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꾸려 방문 상담을 하고 있다. 이 팀을 이끄는 이은승(39·여) 주임은 “사각지대로 밀려난 이들에게 어떤 복지를 연결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이나 방법론이 거의 없어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작업을 제도화하기 위한 법안이 ‘사회보장수급권자 발굴·지원법’이다. 역시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Key Word-부양의무제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도 부양의무자가 기준 이상의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주지 않는 제도. 부모·자녀·사위·며느리가 '부양의무자'다. 부양의무자가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에 따라 수급액이 깎인다. '간주부양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양의무자가 없으면 월 48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간주부양비가 48만원으로 매겨지면 수급액은 '0원'이 되는 식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