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담는 그릇 사회적기업] 일자리 마련 사업서 촉발… 사회공헌 내세운 기업 속속

입력 2014-07-01 02:59
영국 통상산업부는 사회적기업을 ‘사회적 목표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며 주주를 위한 이윤 극대화보다 수익을 주로 지역사회 등에 재투자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이윤 극대화가 아닌 특정한 사회·경제적 목표 달성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각국의 사회적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비슷하다. 시장경제의 실패를 호되게 맛본 후 사회적기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는 점도 유사하다.

김재구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30일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후 실업자 증가 등으로 복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각국 정부는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국가가 이를 전담하기 어렵게 되자 사회적기업에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이 크게 줄자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안정적인 재원을 직접 마련하기 위해 사회적기업으로 변모했다. 반면 유럽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 중심으로 사회적기업이 발전했다. 잡지 출판·판매로 노숙인의 재활을 지원하는 ‘빅이슈’,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앙비’, 저개발국 치료제 개발·판매기업 ‘원월드헬스’, 유명 레스토랑 ‘피프틴’ 등이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대표적 기업이다.

우리나라도 태동 배경이 유사하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마련된 뒤 사회적기업 활동이 본격화됐다는 점은 선진국들과 다르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실업률이 급증하자 정부는 긴급처방으로 공공근로사업을 전개했으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제공하지 못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취약계층에 대한 자활사업이 시작됐으나 이 또한 공공근로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3년 공공근로는 사회적 일자리로 명칭이 바뀌었고 부처별 사업과 민간위탁사업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자활사업 중심으로 진행되던 사회적기업에 대한 논의도 민간단체로 확산됐다. 이를 계기로 2005년부터 국회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사회적기업 법제화 검토가 본격화됐고,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됐다. 특히 이 법안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인증제 도입 내용이 담겼다. 인증 기업에 대해 5년간(예비 인증기간 2년 포함) 인건비 등을 지원해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 사업에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부산대 조영복 경영학과 교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구휼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은 분화를 거듭했다. 일자리뿐 아니라 문화,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통한 사회공헌을 목표로 내건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사회적기업 내부에선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하는 것만이 진정한 존속의 이유냐’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 창출이 사회적기업의 최대 어젠다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한다. 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는 “취약계층 일자리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여전히 사회적경제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2010년 이후 사회적기업을 연구하는 대학 동아리가 생겨나고, ‘소셜벤처 경진대회’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관심 증가는 이른바 ‘1세대 사회적기업’의 뚜렷한 성과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재활용품을 수거·판매하는 ‘아름다운가게’, 지적장애인이 우리밀 과자를 생산하는 ‘위캔’, 폐타이어 등 재활용품을 활용해 만든 악기를 통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하는 ‘노리단’, 컴퓨터 재활용 기업 ‘컴윈’, 친환경 건물청소업체 ‘함께일하는세상’, 장애인 모자생산업체 ‘동천모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솜이재단’ 등이 대표 1세대 사회적기업이다. 이들 기업의 성장·확대·위기·극복 과정은 2, 3세대 사회적기업의 교본이 됐다.

한장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