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오래 산 친구가 물었다. 왜 국민들의 마음이 그렇게 비틀어져 있느냐고. 그는 특히 종편방송의 토론을 보면 출연자 모두 선정적인 언어를 뱉어내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직접 출연해 본 적이 있었다. 방향이 정해진 격류에 정신없이 휩쓸려 가는 느낌이었다. KBS는 총리 후보가 우리 민족을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했다고 말했다면서 민족을 비하했다고 보도했다. 총리 후보에게는 식민사관을 가진 친일·반민족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국민의 입술 위에서 춤추는 정치인들이 재빠르게 몰매주기에 나섰다.
인사청문회 위원장으로 예정된 국회의원이 트위터에 ‘극우 꼴통시대를 여는 신호탄’이란 글을 올렸다. 한 의원은 ‘문창극법’을 발의했다. 그는 문창극씨가 조선 조정의 무능과 관리들의 수탈로 백성들이 일할 의욕을 갖지 못했다고 한 취지의 말을 오해한 것 같았다.
방송만 보고 그런 인식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총리 후보 문창극씨의 간증 동영상을 두 번 꼼꼼히 살펴봤다. 그는 대한민국이 1등 국가가 되자고 했다. 그는 아쉬웠던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얘기했다. 그동안 솔직히 일본의 기술을 배우고 미국시장에서 물건을 사줘서 우리가 잘살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다고 친일 친미라고 하면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경제대국이 된 중국시장이 중요하다면서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그 나라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을 강조했다. 화합과 개혁을 위한 그의 통찰력과 열정이 진솔하게 배어나왔다.
한 인격을 말살시키기 위해 악의로 편집해서 거짓방송하면 그 피해가 너무 크다. 국민들의 잠재의식에 방송은 판결문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오판을 사람들이 진실로 믿듯 방송을 진짜로 받아들인다. 판결은 당사자에게만 효과가 미치지만 거짓방송은 잘못된 여론을 만든다. 그런 여론의 독재를 민주주의로 알고 그 속에서 질식하며 살고 있다. 인위적으로 형성된 여론과 감정에 배치되는 소리를 내면 돌팔매를 맞는다. 사석에서 은밀히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얘기도 공식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일본이라고 하면 무조건 증오해야 하는 밑바닥 정서가 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바로 친일·반민족주의자로 몰린다. 결국 총리 후보는 청문회에 참석해 항변할 기회조차 잃고 침몰했다.
전체적인 구조가 광우병 사태 때와 흡사하다. MBC 피디수첩이 미국산 쇠고기만 먹으면 90% 이상의 국민이 광우병에 걸린다는 거짓방송을 했다. 잘못된 여론에 의해 민동석 쇠고기협상대표가 친일매국노가 되어 도망 다녀야 했다. 그의 인형을 화형식에 처하면서 사람들은 분노했다. 약은 정치인들이 그를 국회에 불러 온갖 모욕을 주었다. 당시 방송작가의 이메일에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한이 하늘에 맺혔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붉은 촛불물결을 보고 겁먹었다고 고백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외교관이 되어 행복했던 쇠고기 협상대표는 법정에서 ‘너희들이 미워하는 건 대한민국이야’라고 그들에게 외쳤다. 그리고 국민행동본부의 연설대에 올라가 투사로 변신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었던 총리 후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거짓과 모략 앞에서 당당히 나서지 못한 것 같다.
광우병 사태 때 방송작가의 글에 이명박정권에 대한 한이 하늘에 맺혔다는 말이 떠오른다. 문창극 때리기의 이면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예전에는 칼이나 독약으로 정적을 암살했다. 그러나 현대판 암살은 거짓방송으로 누명을 씌워 인격을 살해하는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는 죽지 말고 청문회에 갔어야 했다. 사도 바울의 법정항변이 성경에 기록됐듯 그의 말과 표결의 결과가 국회속기록에 영원히 이 시대 허위의 교과서로 남게 했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여의도포럼-엄상익] 오도된 여론에 춤추는 나라
입력 2014-07-01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