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애호가인 김영선(45·서울 마포구)씨는 얼마 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카르멘’을 보기 위해 R석 티켓을 끊었다. 좌석이 거의 매진돼 1층 C열 15열 7·8번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가격은 1장에 20만원이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오른쪽 코너의 무대장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쪽에서 입장하는 출연진도 무대 한가운데 들어오기까지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오페라하우스 1층은 A·B·C열에 24열까지 있고, A와 C열은 1∼10번, B열은 1∼16번까지 있다. ‘카르멘’ 좌석은 전체 865석 가운데 맨 뒤 25열 장애인석과 양쪽의 박스석 90석을 제외하고는 R석 이상이었다. 그나마 B열 10열까지 전체와 A·C열의 10열까지 1∼5번은 25만원짜리 VIP석이었다. 2층 411석 중 200여석이 R석이었고 나머지는 S·A·B석이었다.
현재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의 좌석은 가장 비싼 VIP석부터 R석, S석, A석 순으로 구분돼 있다. 전체 객석의 70% 이상이 VIP석과 R석으로 책정돼 있는 실정이다. VIP석은 기업 협찬사가 대부분 받아 가기 때문에 일반 관람객들이 그나마 비교적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티켓은 R석밖에 없다. 관객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R석을 구매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6년 만에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하고 있는 뮤지컬 ‘캣츠’는 1600여석 중 1층 전체와 2층 일부까지 포함해 1000여석이 VIP석과 젤리클석(14만원), R석(11만원)으로 채워져 있다. S석(9만원)은 2층 뒤쪽에 있고, A석(7만원)은 3층 앞쪽, B석(5만원)은 3층 뒤쪽에 위치한다. 5만원짜리 티켓으로는 배우의 표정 등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다. 1층 가운데와 2층 앞쪽은 VIP석(13만원)과 R석(11만원)으로 채워지고 S석(9만원)은 1층 변두리와 2층 뒤쪽 몇 좌석에 불과하다. A석(7만원) B석(5만원) C석(3만원)은 3층에 위치한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도 VIP석(13만원) R석(11만원) S석(8만원) A석(5만원) B석(2만원) 배치가 비슷하다.
예술의전당은 VIP석 외에도 VVIP석과 P(프레지던트)석 등 최고가 등급이 있었으나 2012년 8월 ‘좌석등급표준제’가 도입되면서 최고가를 R석으로 통일하고 좌석 수도 규제했다. 티켓가격 안정과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공연 제작사와 기획사는 제작비 등을 이유로 R석 좌석을 너무 광범위하게 책정해 문제였다.
게다가 대부분 공연이 협찬 기업체 고객을 위해 VIP석을 슬그머니 다시 만들었다. 한 공연 기획사는 “R석을 주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업체가 많아 VIP석 마케팅이 부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연 티켓이 기업체 선물용으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입장료 거품이 생겨나고 손해는 일반 관람객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R석을 사고도 좋은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큰 맘 먹고 R석 구입했는데… 무대장치가 잘 안 보이네 'R석의 굴욕'
입력 2014-07-0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