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를 들썩였던 여배우 정윤희의 얼굴이 환한 분홍색 LP판 표지, 상자 빼곡히 담긴 손 때 묻은 김광석, 유재하, 들국화의 LP음반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이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곳은 서울 강남구 언주로의 3층짜리 한 레스토랑이다. 이틀 일정의 제4회 ‘서울레코드페어’ 마지막 날인 29일, 음악 애호가들이 한정판, 희귀 음반 등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몰렸다. 첫날만 3000여명이 다녀갔다.
음악 관련 출판사 ‘안나푸르나’, 47년 역사의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 음반 판매점 ‘리빙사’, 앨범 발매·수입부터 공연 기획까지 도맡은 홍대 LP음반점 ‘김밥레코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들이 내놓은 LP와 CD 음반이 3층 건물을 가득 채웠다. 개인판매자까지 가세해 총 50개의 부스가 설치됐다.
LP판이라면 50∼60대 중장년층의 관심사일 것 같지만 의외로 20∼30대 젊은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학생 이진호(26)씨는 “부모님이 소장하시던 LP판을 듣다가 아날로그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레코드페어는 레코드 음반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국내 유일의 박람회다. 지난 2011년부터 매년 이맘때 한 차례씩 열린다. 올해부턴 무료입장으로 바뀌었다. 팝과 재즈, 클래식, 국악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음반사, 인디레이블 등에서 소개하는 장르 음반을 접할 수 있다. 올해는 일본 등 해외 판매자도 참가해 더욱 풍성해졌다.
직접 LP판을 들어볼 수 있는 코너와 LP 케이스, 턴테이블을 판매하는 부스도 설치돼 있어 음악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희귀 음반은 부르는 게 값이지만 발매된 지 10년 안팎의 국내·외 LP와 CD는 2∼3장씩 묶어 1만∼2만원 선에서 판매된다. 단돈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흘러간 가요 CD도 있다.
아날로그 음악이 새롭게 사랑받으면서 프로모션 형식으로 LP판을 만드는 가수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가왕(歌王) 조용필이 19집 ‘헬로우’를 CD, 디지털음원과 함께 LP로도 만들어 판매했다. 아이돌 가수 지드래곤도 솔로 2집 ‘쿠데타’ 앨범을 LP 한정판으로 만들었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를 앞두고 한정 LP음반을 발매했다. 록그룹 노브레인의 데뷔음반 ‘청년폭도맹진가’(2000), DJ 소울스케이프의 ‘180그램 비트’(2000),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 포크 뮤지션 김목인의 ‘음악가 자신의 노래’(2011), 힙합 뮤지션 도끼, 빈지노, 더콰이엇의 새 음반 ‘11:11’(2014)이 각각 500장씩 판매됐다. 행사장에선 김목인과 가수 에몬의 쇼케이스도 열렸다.
김영혁 서울레코드페어 사무국장은 “LP, CD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디지털 시대지만 음악 애호가들은 아날로그 음악을 듣는 재미도 추구하고 있다”며 “사운드의 차이는 물론이고 실물의 음반을 수집하고 만지고 들으면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글·사진=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레코드판, 음악을 만져보는 재미
입력 2014-06-30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