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① 20년째 수집·연구하는 송병구 목사

입력 2014-07-07 02:18
지난 4일 경기도 김포 고촌감리교회 ‘크로스갤러리’에서 만난 송병구 목사. 송 목사는 “십자가의 다양성을 알게 되면 신앙도 풍성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포=강민석 선임기자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십자가. 예수님 조각은 상아로 만들어졌다. 김포=강민석 선임기자
불가리아 정교회의 십자가. 죽은 이를 추모할 땐 십자가 문양 아래 있는 홈에 초를 꽂아 사용한다. 김포=강민석 선임기자
중남미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인상적인 에콰도르의 ‘선한 목자 십자가’. 김포=강민석 선임기자
사도 바울은 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와 씨름했다. 신앙은 이 두 가지 십자가를 비교하고, 증거하고, 일치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성도들의 유일한 자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이다. 매달 한 번씩 연재하는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창의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의 신앙무늬를 십자가에 새겨 넣는다. 성도는 십자가의 사랑을 닮고, 십자가의 아픔을 나누고, 십자가의 화해에 동참하면서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한다. 십자가 창작자들의 솜씨와 표현 방식은 그런 십자가의 영성을 오롯이 보여줄 것이다.

십자가를 수집·연구하는 송병구(53·경기도 의왕 색동교회) 목사는 최근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20년 전 독일 보훔시에서 목회할 때 교분을 쌓은 마틴 뢰트거 목사가 십자가 8점을 선물한 것이다. 이 십자가들은 뢰트거 목사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생사를 넘나들던 전장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했다.

“뢰트거 목사의 아버지는 생전에 ‘전쟁에서 나를 살린 건 십자가였다’고 고백했다고 해요. 남편 유품을 보관해 온 뢰트거 목사의 어머니도 십자가 기증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하더군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뢰트거 목사가 소중한 아버지의 유품을 선뜻 내놓은 건 송 목사의 ‘십자가 사랑’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송 목사는 교계 안팎에서 ‘십자가 목사’로 유명하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십자가 1000여점을 모았다.

지난 4일 경기도 김포 고촌읍 고촌감리교회에서 송 목사를 만났다. 이 교회 1층엔 ‘크로스갤러리’로 불리는 전시관이 있다. 송 목사가 수집한 십자가 중 500여점을 전시한 공간이다.

“전시관 크기가 40평(약 133㎡) 정도 됩니다. 수집한 십자가를 전부 전시하기엔 공간이 좁아서 비정기적으로 십자가들을 교체하고 있어요. 십자가를 감상하다 은혜를 받거나 십자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송 목사는 1994년 독일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십자가 수집을 시작했다. 보훔시 성탄장터에서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는 말씀이 적힌 주석 십자가를 샀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20년간 십자가에 눈이 멀었다. 십(十)자 형태만 봐도 눈길이 간다”며 미소를 지었다.

지구촌 성도들의 이목이 송 목사가 기획한 ‘세계의 십자가전’에 쏠린 적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가 열린 지난해 가을, 행사장인 벡스코엔 다양한 부스가 들어섰지만 총회 기간 내내 문전성시를 이룬 곳은 ‘세계의 십자가전’이었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십자가는 300여점이었다.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관람객, 갖고 있는 십자가를 기증한 이집트 곱틱교회 한 주교…. 세계인이 십자가로 소통한 자리였습니다.”

송 목사의 십자가 사랑은 십자가 연구로 이어졌다. 십자가의 유래, 종류, 의미…. 십자가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십자가엔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앙의 심연이, 기독교인이 걸어온 고난과 환희의 역사가 담겨 있다.

“십자가를 희생의 의미로만 해석하는 건 기독교의 단면만 보는 거예요. 십자가에는 다양한 가치가 녹아 있어요. 화해 평화 자비 연대…. 십자가 수집이 제겐 엄청난 기쁨입니다. 십자가 관련 책을 4권 냈는데, 기독교의 각종 상징까지 녹여낸 책을 앞으로 6권 더 낼 생각입니다.”

송 목사는 “한국교회들이 큰 건물을 짓는 데만 신경을 쓴다. 십자가를 비롯한 ‘예술품’을 남기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십자가가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우리나라에 좋은 예배당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듯한 예술품, ‘국보급 보물’이 될 만한 조형물은 없어요. 건물을 크게 짓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 중 상당수는 신앙이 풍성해진 느낌을 받았다고 간증합니다. 십자가엔 신앙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어요.”

송 목사는 다사다난했던 인생 스토리도 털어놓았다. 신학대생이던 1983년 학생운동을 하다 투옥된 일, 수집과정에서 만난 십자가 제작자들의 삶, 독일 체류 당시 느낀 통일의 중요성 등 이야기보따리를 끝없이 풀어냈다. 그는 “민족의 고난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십자가 연구로 옮아갔다”며 “목회자로서의 소명은 평화와 화해에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크로스갤러리를 나설 때 전시관 외벽에 조그맣게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가복음 8장 34절을 읽기 편하게 풀어쓴 문장이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묵상하게 만드는 말씀이었다.

김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