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DK유엔씨] 독서경영으로 IT에 인문을 입히는 ‘DK유엔씨’

입력 2014-06-30 02:01 수정 2014-06-30 09:13
동국제강그룹 계열사인 DK유엔씨 직원들이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본사 사옥 도서관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 회사는 매달 1권의 책을 정해 전 직원이 함께 읽는다.서영희 기자

모두 달변이었다. 취재를 위해서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본사에서 만난 DK유엔씨의 직원들은 기자의 질문에 적절한 표현과 인용을 곁들여 명쾌하게 요점을 정리하면서 척척 답했다. DK유엔씨는 동국제강 그룹의 정보기술(IT) 계열사다. 엔지니어 특유의 무미건조함을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DK유엔씨는 독특한 독서경영 프로그램으로 IT에 인문의 향기를 입히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이 회사는 ‘특급 독서’라고 해도 될 만큼 회사 전체가 독서에 빠져 있다. 400여명 전 임직원이 참여한다. 직원들은 팀별로, 혹은 그룹을 정해 원하는 날짜에 모여서 매달 1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인다. 토론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회사 전산망의 게시판에 올라와 임직원들이 공유한다.

이날 열린 한 독서토론 모임을 잠깐 지켜봤다. 본사에는 층마다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미니도서관이 마련돼 있었다. 퇴근 무렵 이곳에서 ‘답을 내는 조직’(쌤앤파커스)을 읽은 직원 5명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전 직원이 이렇게 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토론을 한다.

“리더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지난달 읽었던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이 떠올랐어요. 쇄빙선처럼 앞길이 얼음으로 막혀 있으면 망치로 깨면서라도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리더 아니겠습니까?”

“이 책을 쓴 분이 앞서 쓴 ‘일본전산 이야기’라는 책과 비교해 보면, 내용은 비슷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네요.”

토론 수준이 상당했다. 바로 옆 회의실에서도 20여명이 둘러앉아 끝장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같은 책을 두고 ‘우리 회사에선 어떻게 답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결론이 날 때까지 퇴근을 미루고 논의를 거듭했다. “끝장토론 내용을 다시 전 직원과 임원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 없다”고 인재개발팀 박수진 과장은 귀띔했다.

DK유엔씨가 이렇게 강력한 독서경영을 도입한 것은 2012년. 서울 여의도와 을지로, 인천, 부산, 충남 당진, 경북 포항, 경기도 파주, 충북 옥천 등 전국 9개 사업장에 흩어져 있는 직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매달 책 1권을 정해 같이 읽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토론 모임은 팀 구분 없이 구성해 다른 사업장과 팀의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직원 중에서 뽑힌 북마스터 17명이 책을 선정한다.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김성근이다’(다산라이프) ‘정글만리’(해냄) 등 벌써 25권을 읽었다.

처음엔 “귀찮게 왜 이런 걸 하느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모임을 해도 책을 안 읽은 사람이 더 많은 적도 있었다.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것을 막내 직원에게 떠맡기기도 했다. 아예 인터넷에서 독후감을 복사해 제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기업체가 이런 직원들의 반발을 우려해 독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려하는 데 그친다. ‘책 읽기는 개인 취미활동’이라는 인식의 벽 앞에 무너지는 것이다. 하지만 DK유엔씨에는 ‘독서로 하나 된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CEO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변명섭 대표는 성장이 정체된 시스템통합 사업 분야에서 위기를 돌파할 수단으로 독서경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독서 토론은 진지해졌다. 경영기획팀 오규석 사원은 “처음엔 힘들었지만 좋은 책을 골라 함께 얘기하며 공감대를 넓혀가는 게 좋았다”며 “회사에서 정해준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다니다보니 다른 책도 읽게 됐다”고 말했다.

독서는 이제 DK유엔씨의 조직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위해 더 강력한 독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북마스터들이 선정한 책을 회사가 전 직원에게 나눠주고, 독서토론 내용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해 시상하는 서바이벌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임원회의에서 직접 토론 내용을 발표해 매달 1등을 뽑고, 연말에는 1등 사원을 모아 다시 독서왕을 선발해 수백만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독서왕이 회사의 모범사원이 되는 셈이다.

김현대 총무팀장은 “외부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일도 많아 경연 방식을 도입했는데,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해 직원들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프레젠테이션 1등에 뽑힌 김진웅 재경팀 차장은 “책 내용이 방대해 하나의 주제를 잡은 게 주효했다”며 “위기를 놓치지 말자는 우리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를 포인트로 삼아서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메시지와 연결한 것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책읽기를 지독히 싫어했는데, 억지로라도 읽다 보니 이젠 독서의 재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DK유엔씨는 책으로 소통하고 책으로 방향을 찾아가는 독서 기업이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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