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은행나무를 보세요. 온통 덩굴에 감겨 잎을 피우지 못해 말라 죽었어요. 어린이 여러분은 은행나무를 괴롭히는 덩굴처럼 굴지 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세요.”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숲해설가 이태복(58)씨가 가상의 어린이 청중들에게 자상하게 설명하는 시범을 보였다. 실제 이씨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이씨와 비슷한 또래의 장년 10여명이었다. 이씨는 숲생태지도자협회 부설 사회적기업 ‘숲자라미’에서 진행하는 ‘숲해설전문과정’ 교육생이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인생 이모작’을 돕는 사업이다. 교육 수료 후 시험에 합격하면 자연휴양림이나 국립수목원에서 ‘숲해설가’로 활동할 수 있다.
이날 교육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꽃과 나무에 대해 시범 강의를 하는 자리다. 각자 주제를 선택해 강연을 한 뒤 수업 난이도와 내용의 정확성 등을 평가 받는다. 청중은 같은 교육생들이 대신 맡기로 했다. 이씨가 선택한 주제는 ‘덩굴식물’. 그는 교육생들을 서울숲 이곳저곳으로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능소화예요. 원산지는 중국입니다. 양반들이 좋아해 ‘양반꽃’이라고도 해요. 꽃 모양이 옆으로 누워있는 게 꼭 트럼펫 같죠?” “이건 인동초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이란 뜻이에요. 5∼6월에 꽃이 피는데 어떤 잎은 노랗고 어떤 잎은 하얀 게 꼭 금과 은 같아서 ‘금은화’라고도 해요.”
다음은 주부 신해영(58)씨 차례. 신씨는 ‘버즘나무’를 주제로 정했다. 교육생들을 햇볕이 내리쬐던 광장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 밑으로 안내했다. “이 나무는 버즘나무입니다. 플라타너스라고도 하지요. 7명의 사람에게 필요한 산소를 이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낸답니다.” 신씨의 말에 한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
신씨의 강의가 이어졌다. “나뭇잎을 하나 주워보세요. 뒷면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게 뭘까요?” 교육생들은 입을 모아 “숨구멍이요!”라고 대답했다. “네, 맞아요. 돋보기로 잘 보세요. 이슬이 맺혀 있지요? 이곳으로 물을 내뿜는 거예요. 이 때문에 숲은 바깥보다 기온이 3∼4도 낮아요. 그래서 숲에 들어오면 기분이 상쾌한 겁니다.”
박현회(61)씨는 학생들을 모감주나무 아래로 이끌었다. “이 나무는 일명 ‘염주나무’라고도 합니다. 열매가 익으면 까맣게 변해 염주로 쓰기 때문이에요.” 나무 아래는 가지에서 떨어진 노란 꽃잎으로 가득했다. 박씨는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 꽃잎이 떨어져 있지요? 여러분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 나무가 꽃길을 만들어준 겁니다”라고 말했다.
교육생 대부분은 은퇴한 공무원이나 직장인이다. 취미로 등산을 즐기다 숲해설가에 매력을 느낀 전업주부도 상당수다. 이른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잃고 소일거리를 찾으려는 40대 남성도 종종 보인다. 앞서 덩굴식물 강연을 한 이태복씨는 곧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이씨는 “노후에 취미 삼을 수 있고 보람도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며 “등산을 다니며 산과 숲을 좋아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숲자라미 관계자는 “이른 은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분들에게 ‘제2의 인생’을 마련해주고자 이 같은 사업을 기획했다”며 “더 많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생태적 여가를 즐기는 동시에 자부심을 갖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가치를 담는 그릇 사회적기업] 인생 2막, 숲해설가로 새 출발 도와드려요
입력 2014-06-30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