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구룡마을 갈등의 본질

입력 2014-06-28 02:35

서울 강남구 언주로 타워팰리스. 대표적인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부(富)의 상징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불과 1.3㎞ 떨어진 구룡산 북사면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합판과 비닐, 스티로폼 등으로 지어진 허름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대규모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도시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곳이다. 이 마을에는 현재 1200여 가구 2500여명이 살고 있다.

구룡마을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도시개발계획 결정권자인 서울시와 관할 자치구인 강남구가 개발 방식을 놓고 팽팽히 맞서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서울시장과 새누리당 소속 강남구청장이 당사자인지라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근원을 정치적 배경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은 대도시 개발사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한다. 거주민 재정착을 목표로 내걸고 추진한 도시개발사업이 뿌리 내릴 수 있느냐를 가늠할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SH공사는 거주민 100% 재정착을 목표로 구룡마을 개발사업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원주민 정착률이 5∼30%에 불과한 민간개발 방식과 달리 거주민의 주거 여건 및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시는 마을 주민들의 재정착이란 목표와 사업시행자인 SH공사의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혼용 방식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구룡마을 전체 면적의 최대 2∼5%에 환지 방식을 적용할 경우 토지매입 비용과 그에 따른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이곳에 짓는 임대주택의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대폭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용면적 49㎡ 임대주택의 경우 보증금 2500만원, 월세 19만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강남구 주장대로 땅을 100% 수용해 임대주택사업을 하면 보증금 5300만원, 월세 35만원 수준이 돼 세입자들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강남구는 환지 방식을 도입하면 대토지주에게 특혜를 주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서울시는 이것도 과장이라는 입장이다. 개발 이익이 사유화될 수 없는 공영개발인 데다 환지 규모를 가구당 1필지나 1주택으로 제한하고, 용도도 주거용지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특혜 우려는 기우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남구가 서울시 개발 방식을 완강히 거부하는 건 원주민들의 재정착을 꺼리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강남구가 주장하는 전면 수용·사용 방식은 거주민들에게 이주비 몇 푼 쥐어주고 결국은 오랜 삶터에서 내쫓는 기존 도시개발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오랜 기간 대치하면서 올해 말 착공해 2016년 완공하려던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도시개발구역 지정 2년째인 오는 8월 2일까지도 강남구가 개발계획을 입안하지 않으면 구역 지정이 실효돼 개발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를 놓고 구룡마을 주민, 서울시, 강남구 등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끝장토론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감사원도 27일 감사결과 발표에서 대체적으로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며 두 기관이 협의해 조속히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깨달은 게 있다. 사람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상식이다. 거주민의 삶을 중심에 둔 새로운 도시개발사업의 성공 모델을 구룡마을에서 확인할 수는 없을까.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