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담는 그릇 사회적기업] 정부 지원은 마중물… 민간 연계로 자립 물길 터야

입력 2014-06-30 03:35 수정 2014-06-30 14:42

사회적기업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취약계층 일자리, 환경, 교육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도 창출하는 기업을 뜻한다. 그동안 정부 지원 속에 사회적기업은 1000개를 넘어설 만큼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스스로 생존해나가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사회적기업을 통한 '착한 경제'의 저변 확대를 위한 조건과 전략을 시리즈를 통해 알아본다.

학자들은 사회적기업을 일반 기업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을 반대한다. 사회적기업학회장인 부산대 경영학과 조영복 교수는 “정부가 일자리 예산으로 사회적기업에 일정 기간 인건비 등을 지원해주는 것은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을 위한 복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지속가능성으로 사회적기업가들의 열정을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예비 단계를 포함해 총 5년간의 정부 인건비 지원 기간이 끝난 후 사업이 위축되거나 고용 규모가 줄어드는 곳이 많아지면서 사회적기업의 자생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된 후 지난 5월 말까지 1160개 기업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지만 이 가운데 78개 기업이 문을 닫거나 인증이 취소됐다. 폐업률은 6.7% 수준으로 일반사업자·법인(약 14%)보다 낮다. 하지만 실제 정부의 인건비 사회보험료 지원 없이는 수익을 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기업이 상당수다. 경력단절 여성의 초·중·고교 도서관 관리사 파견업을 하던 지방의 한 사회적기업은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받을 때는 흑자를 내다 2011년 재심사에서 탈락, 정부 지원이 끊기자 적자를 못 견디고 2년 만에 폐업했다. 일반 제조업체의 경우 연간 1인당 매출 1억원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기업의 경우 1인당 매출 5000만원이 되는 기업을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강경흠 육성평가팀장은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 고용 등 소명의식 때문에 수익이 나지 않아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기업이 많아 상대적으로 폐업률이 낮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익의 3분의 2를 사회적 목적 실현을 위해 써야 하는 등 까다로운 인증 조건과 여전히 부족한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 역시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양극화와 환경파괴 같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사회적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대안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지만 초·중·고교 사회·경제교과서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소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용노동부의 ‘2012년 사회적기업 실태조사 보고서’와 ‘2012년 사회적기업 성과분석 보고서’ 역시 자생력에 대한 의문 등을 포함한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양한 지원 제도들이 혼재해 개별 사회적기업이 제도들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기업이 일자리 제공형 일색(전체의 60.9%·2012년 말 기준)이라는 것이다. 또 고용 효과가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7년까지 10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부의 비전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사회적기업 자생력 강화를 위해 자본시장을 통한 금융조달 수단 등 인프라를 만들어 정부 보조금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직접적 지원보다 구체적 실태 분석을 통한 교육 및 컨설팅, 홍보, 금융지원 등 중장기적 관점에서 간접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지금이야말로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사회적기업이 정부 지원 의존도를 줄이고 민간과 연계해 주도적으로 기업 운영에 나설 때라고 말한다. 부산대 조 교수는 “정부 지원은 마중물 역할만 하고 민간 자금이 사회적경제에 들어올 수 있는 물꼬를 터줘야 한다”며 “민간과 연계해 사회적 가치 창출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직접 지원도 지금보다 더 선별적으로 이뤄지되 과감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있다. 기술개발비, 고용촉진장려금 명목 등으로 정부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금액을 감안하면 사회적기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말 그대로 ‘생색’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 지원도 단기 효과가 큰 인건비 지원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기업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 생태계’ 조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로 개척과 마케팅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히고 있어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에 인색한 공공기관을 독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공공기관의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는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40조원에 달하는 공공 조달시장에서 사회적기업의 영역은 2632억원에 불과하다.

아울러 많은 사회적기업가들은 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이나 가치 증식이란 관점에서 비경제적·비재무적 지표를 적용하는 평가 잣대의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사회적기업의 성격상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의 고용 창출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원가경쟁에서 약점을 안고 갈 수밖에 없어 이른바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한국지표’ 같은 잣대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정교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