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대학가요제

입력 2014-06-28 02:38
이탈리아의 명곡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1902년 소렌토 시장이자 호텔 주인인 트라몬타노가 데 쿠르티스 형제에게 부탁해 만들어졌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가뭄 피해를 돌아보기 위해 남부 지방을 방문한 총리에게 우체국을 세워 달라고 청원하기 위해서였다니.

쿠르티스 형제는 몇 시간 만에 노래를 만들었고 소프라노 가수가 총리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빛을 본 것은 2년 후 나폴리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였다. ‘오 솔레미오(오 나의 태양)’도 이 가요제에서 입상하면서 알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51년 이탈리아 북서부의 항구도시 산레모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가요제를 개최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 이탈리아는 ‘시위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노동자들의 파업과 과격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 시절 시위가 시민들에게 주는 고통을 노래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아요’란 칸초네가 산레모 가요제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며 팍팍한 세상살이에 청량제 같은 위안을 준다. 중국의 ‘위지 동이전’에는 명절이면 노래와 춤으로 며칠 밤을 지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즐겼다. 노래 경연대회가 풍성하고 노래방 인기가 식지 않는 것도 이 영향일 터다.

MBC가 36년 역사를 지닌 ‘대학가요제’를 폐지한다는 소식이다. KBS의 ‘전국노래자랑’이 중·노년층을 TV 앞으로 끌어당겼다면 ‘대학가요제’는 군사독재 시절 젊은이들의 아픔과 울분을 토해내는 해방구였다. 1977년 1회 가요제에서 ‘나 어떡해’로 서울대 농대 밴드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자 스쿨밴드 붐이 일었고, 이범용·한명훈의 ‘꿈의 대화’,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등 주옥같은 노래와 실력파 가수들을 배출했다.

1990년대 들어 대형 연예기획사 출신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끌고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득세하면서 대학가요제는 한물갔다. 대학가요제 대상 상금이 500만원인데 케이블TV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상금은 5억원이다 보니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당연하다. 이선희와 이상은 등을 탄생시키며 같은 시기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이었던 강변가요제는 2001년 이미 막을 내렸다. 순수와 낭만이 자본의 힘에 밀려 하나씩 하나씩 퇴장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