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한국 축구 시계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으로 되돌아 갔다. 한국 축구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27일(한국시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에서 벨기에에 0대 1로 패했다. 1무2패 성적으로 H조 꼴찌를 차지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승리를 맛보지 못한 것은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이다.
◇예견된 참패=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지난해 6월 말 홍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맞았다. 본선에서 맞설 팀들이 수년째 같은 감독 지도 아래 팀을 조련해온 것에 비하면 때늦은 선택이었다. 앞서 감독 교체가 잦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홍 감독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홍명보 키즈'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23세 이하 선수로 제한된 올림픽과 달리 나이 제한이 없는 월드컵을 위해선 패기와 경험을 고려한 신구의 조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홍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심지어 홍 감독은 자신의 선수선발 원칙까지 깨면서 소속팀에서 거의 뛰지 못한 애제자 박주영을 발탁했다. 홍 감독은 대학 후배인 박주영을 끝까지 감쌌다. 박주영을 조별리그 1, 2차전 선발로 내세웠지만 얻은 것은 '슈팅 1개'였다. 경험 부족에다 중원을 지휘할 리더십조차 갖추지 못했다.
홍 감독은 벨기에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가 다음 월드컵을 위해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 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범현대가' 장기 집권의 폐해=2011년 12월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던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자신의 감독 시한을 아시아 최종예선으로 한정했다. 본선 무대에는 경험 많은 외국인 감독이 선임되길 바란다는 진언과 함께다. 스스로 족쇄가 될 시한부 감독을 감수하면서까지 최 감독은 외국인 감독 선임을 건의한 것이다.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최선의 선택을 방해하는 대한축구협회(KFA)의 복잡한 인맥 구조를 잘 알고 있던 최 감독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16년간 대한축구협회 수장을 맡았다. 초장기 집권이다. 2009년에는 정 명예회장의 강력 추천으로 조중연 현 동아시아축구연맹회장이 협회장에 올랐다. 2013년부턴 정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맡고 있다. 21년째 '범현대가' 인맥이 대표선수 및 감독 선임에 관여할 수 있는 수장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정 명예회장은 축구협회장 재임 동안 한일월드컵 개최 및 4강 진출 등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 같은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문화의 본질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장기 집권은 '축구 여당'을 구축했다. 축구 여당은 선수 및 감독 선발에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정 대학 출신들이 대표팀 감독을 번갈아 맡았다. 열악한 축구 인재풀을 스스로 좁히며 '축구 야당'을 배척했다. 홍 감독도 선수시절부터 정 명예회장이 총애하며 키워낸 '정 명예회장 키즈'다. 지금은 감독 개인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화를 통한 대개조다.
상파울루=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진단! 한국축구] ① 홍명보號 왜 침몰했나
입력 2014-06-28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