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과감한 결단을 내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27일 오전(한국시간) 한국과 벨기에의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리그 최종전이 끝난 뒤 축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은 벨기에 선수 1명이 전반 44분 퇴장당해 수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0대 1로 패했다. 한마디로 선수들의 기량 부족과 감독의 전술 부재가 빚어낸 이유 있는 패배였다.
◇아쉬웠던 선수 교체=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과 이탈리아는 16강전에서 맞붙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단을 내렸다. 후반 중반 이후 김태영, 김남일, 홍명보 등 한국의 수비수들을 차례로 벤치로 불러들인 것. 그리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수들을 내보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공격수들을 총동원한 히딩크 감독의 승부수였다. 결국 한국은 2대 1의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제자 홍명보 감독은 다른 전술을 사용했다. 다득점을 위해 공격의 고삐를 조여야 할 후반 21분과 28분 잘 뛰고 있던 공격수 김신욱과 손흥민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공격수 김보경과 지동원을 투입했다. 한국은 수비수들을 줄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후반 33분 벨기에 수비수 얀 베르통언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한국은 전반 44분 벨기에 미드필더 스테번 드푸르가 김신욱의 발목을 밟아 퇴장 당하자 승리의 여신이 한국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드푸르의 퇴장은 한국에 독이 됐다.
벨기에 대표팀 마르크 빌모츠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레드카드가 나와서 놀랐다”며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수비에 집중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벨기에 선수들은 후반 자기 진영에 두터운 수비벽을 세웠고, 한국은 좀처럼 이를 허물지 못했다. 만일 홍 감독이 공격수들을 더 늘려 ‘벌떼 공격’을 펼쳤다면 벨기에 수비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벨기에 선수가 퇴장당한 이후 우리 후방에 수비수가 많이 남았다”며 “승부를 냈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격수를 모험적으로 늘려 상대를 괴롭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죽음의 D조에 속한 ‘언더독’ 코스타리카(FIFA 랭킹 28위)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술로 2승1무를 거두고 가뿐하게 16강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코스타리카는 탄탄한 조직력과 5백을 중심으로 한 ‘선수비-후역습’ 전술로 강호 우루과이와 이탈리아를 연파했다. 한국은 이런 과감한 전술 변형을 시도하지 않았다.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있는 한국은 상대국들에 쉽게 읽혔다. 김 위원은 “우리는 전술이 고정돼 있다 보니 상대가 분석하기 용이했다”며 “세계적인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못 넘은 세계의 벽=브라질월드컵 사상 첫 원정 8강을 노리던 한국은 H조 최하위(1무2패)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한국이 ‘무승 치욕’을 당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가장 큰 요인은 세계적인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이는 기량이었다.
김호곤 전 국가대표 감독은 “월드컵에서 이변이 일어날 수 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며 “기량이 있어야 조직력도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벨기에전 패배도 결국 일대일 돌파도 못하는 등 기술적인 문제에서 온 것”이라며 “세계의 벽은 과연 높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성용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상대 선수가 퇴장당하면서 벨기에가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공략하기 힘들었다”며 “상대 수비를 돌파하기에는 우리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월드컵에서 상대한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에 대해 “신체적, 기술적, 경기운영 등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뛰어났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어린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한국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각자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장하며 기량을 닦는 것이다.
상파울루=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전술 부재에 기량 부족까지… ‘한국형 축구’는 없었다
입력 2014-06-28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