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반 토막 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권이 부실 대출에 따른 대규모 충당금 적립과 금융 당국의 제재까지 사면초가에 빠졌다. 갖은 금융 사고와 내부통제 문제로 제재 대상이 된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만 10여명인데, 이들의 징계 수위 확정은 당분간 미뤄졌다. 업황 악화 속에서 경영 공백에 시달릴 금융회사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26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 등 15개 금융회사 임직원 220여명의 징계 수준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맺지 못했다. 오후 2시30분 시작한 제재심의위는 진술인들의 소명이 길어지면서 오후 8시 넘어서까지 진행됐고, 15건의 안건 중 이월안건 7건과 KB금융지주·국민은행 등 2건만을 일부 논의한 채 마무리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뇌부들이 직접 적극적인 소명에 나서 시간상 당일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징계 대상자만 120여명에 달한 KB금융이 제재심의위의 주인공 격이었고, 다른 안건들은 논의되지도 못한 채 뒤로 밀렸다.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일본 도쿄지점 부실대출,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의 내부통제 문제 등으로 문책경고(감봉)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은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제재심의위 출석 전 기자들에게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불거진 문제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라고 각각 2시간 가까이 항변했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가 열리는 11층 한편에 KB금융과 국민은행 임직원을 위한 대기실을 따로 마련했다. 제재심의위는 제재 대상자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해 심의위원의 판단을 돕는 대심제(對審制) 방식으로 이뤄졌다. 방호원이 언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회의실 안에서는 이따금 높은 목소리도 새어나왔다. 임 회장은 소명 뒤 굳은 표정으로 “직원들이 거리에 나앉는 슬픈 일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심의위원들에게 배려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대규모 제재에 금융권의 볼멘소리가 높았지만 금감원은 엄정한 대응을 시사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제재심의위가 열리기 전 “평소와 다름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제재심의위가 끝난 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KB금융 측의) 소명은 충분히 예상했던 수준이었고, 제재 수위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제재 사태의 장기화가 위기에 처한 금융권의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4조원으로 전년(8조7000억원)에 비해 53.7% 감소했다. 낮은 금리 탓에 이자수익이 많이 줄어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1분기 1.80%로 내려앉은 상태다.
이날 제재심의위에서는 정보 유출을 일으킨 카드 3사 수장들을 포함해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리처드 힐 전 행장, 한국씨티은행 하영구 행장, 우리은행 이순우 행장 등의 제재 안건도 논의될 예정이었다. 징계 수위를 확정지을 다음 제재심의위는 다음 달 3일 열린다.
박은애 이경원 기자 limitless@kmib.co.kr
KB 임영록·이건호 징계 내달로 연기
입력 2014-06-27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