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경질’ 정홍원 총리 헌정 사상 첫 유임] 60일 만에 ‘도로 鄭’… 국가 개조 물거품 되나

입력 2014-06-27 02:23
정홍원 국무총리가 26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임 결정 이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 정 총리가 제출했던 사표를 60일 만에 반려하고 유임키로 했다고 청와대가 전격 발표했다. 이병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유임시키기로 결정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정 총리가 지난 4월 27일 사의를 표명한 지 60일 만이다.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하는 형식이었으나 사실상 경질한 ‘시한부 총리’를 다시 유임시킨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을 우려한 고육지책이지만, 그동안 국정 혼선에 대한 비난과 함께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총리 유임은 인적 쇄신 대상이 사회적 적폐 척결의 선봉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됐다는 뜻이어서 많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정 총리 유임 배경에 대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께 국가 개조를 이루고 국민안전 시스템을 만든다는 약속을 드렸고, 이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부실대응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의 ‘원점 회귀인사’ 비판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지난 2개월간 국민들을 상대로 거듭 천명해 왔던 ‘새로운 대한민국’ ‘국가 대개조’ 등의 약속도 결과적으로 허언(虛言)이 됐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국가 개혁의 적임자 찾기를 포기한 박 대통령 역시 ‘원칙과 신뢰’라는 국정철학을 스스로 어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는 새 내각이 구성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 총리,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국정과제와 국가 개조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총리가 지금까지의 ‘대독총리’에서 벗어나 갑자기 책임총리로서 2기 내각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더욱이 앞으로 공식 출범할 2기 내각이 산적한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도 더욱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수차례 공언했던 국가 대개조 수준의 공직개혁 의지에도 의문이 커졌다. 박 대통령은 이미 총리 교체를 전제로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조직 축소, 해경 해체 등 국정 개혁 차원에서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과 총리 유임은 전혀 박자가 맞지 않는다. 또 세월호 참사 책임자인 정 총리가 국가안전처, 인사혁신처 등 새로운 부처를 이끌 동력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단순한 총리 유임이 아닌, 개혁 포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및 부실 대응, 사회적 부조리 등에 대한 책임소재도 모호해졌다. 여권은 박 대통령 결정을 이해한다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책임 회피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