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반 토막 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은행권이 부실 대출에 따른 대규모 충당금 적립과 금융 당국의 주요 시중은행 임직원 제재까지 사면초가에 빠졌다. 내부통제 문제에 강경 대응 중인 금융 당국이 임직원 징계를 확정하면 경영 공백기에 빠질 금융회사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26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10여명을 포함한 210여명의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징계 수준을 논의했다.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은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일본 도쿄지점 부실대출,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의 내부통제 부재로 인해 문책경고(감봉)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 받은 상태에서 제재심의위에 출석했다. 임 회장은 금감원에 도착해 “LIG 손보 인수는 문제없게 하겠다”고 말했고, 소명 이후에는 “직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지 않도록 선처를 부탁한다”고 했다.
징계 대상자만 120여명에 달한 KB금융은 제재심의위의 주인공 격이었다. 지주와 핵심 계열사 수장이 모두 제재심의위에 출석하다 보니 수행 직원이 30여명에 달했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가 열리는 11층 한편에 KB금융과 국민은행 임직원을 위한 대기실을 따로 마련했다. 임직원들은 초조한 나머지 임 회장의 소명이 이뤄지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질 못했다.
제재심의위는 대상자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부여해 심의위원의 판단을 돕는 대심제(對審制) 방식으로 이뤄졌다. 방호원이 언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회의실 안에서는 치열한 논박이 벌어지는지 이따금 높은 목소리도 새어나왔다. 금융 당국은 여러 건의 특별검사가 동시에 벌어질 지경으로 해이해진 내부통제 책임을 추궁했고, KB금융 측은 두 수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역시 파이시티 불완전판매 건과 CJ그룹 차명계좌 건으로 대상에 올랐다. 다음 달엔 신한은행이 고객정보 불법 조회로, 하나은행은 KT ENS 사기대출 건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 이미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재임 당시 미래저축은행 부실대출 건으로 중징계를 받은 상태다.
연초부터 내부통제 강화를 천명한 금감원은 금융권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엄정한 대응을 시사했다. 제재심의위원장을 맡은 금감원 최종구 수석부원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해임권고(면직), 직무정지(정직), 문책경고(감봉), 주의적경고(견책), 주의 등 5단계 가운데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향후 3∼5년간 재취업이 제한돼 사실상 금융권에서 ‘아웃’된다.
지난해 저금리와 기업부실로 인한 대규모 충당금 적립으로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4조원으로 전년도(8조7000억원)에 비해 53.7% 감소했다. 낮은 금리 탓에 은행 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수익이 많이 줄었다.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1분기 1.80%로 내려앉은 상태다.
박은애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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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에 충당금까지… 울고싶은 금융권
입력 2014-06-27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