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두 남자, 선한 동행

입력 2014-06-27 02:46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에서 택시기사 이완기씨(오른쪽)와 살인죄로 복역했던 태모씨가 나란히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생면부지였던 두 사람은 2012년부터 ‘가족’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김지훈 기자

“형, 소 도가니가 아픈 다리에 좋대.”

26일 낮 12시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에 야간 택시를 운행하는 이완기(58)씨가 들어서며 외쳤다. 양손에 닭과 도가니, 은행, 마늘 등을 잔뜩 들고 있었다. 도가니가 들어간 삼계탕 3인분을 끓인 뒤 한 그릇에 가득 담아 같이 사는 태모(63)씨에게 건넸다. “이거 먹고 냉면도 먹을까?” 이씨가 묻자 흰머리에 말수가 적은 태씨가 “이것만 먹어도 배부르겠네” 하며 사양했다.

“형은 몸에 좋은 건 안 먹더라.” 이씨가 자기 그릇에서 마늘과 도가니를 떠서 태씨 그릇에 얹었다. 삼계탕을 먹는 태씨 얼굴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씨는 “형이 틀니를 해서 보들보들한 것밖에 못 먹는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삼계탕을 먹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태씨는 “동생 같은 사람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두 사람은 2012년 11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태씨는 다리가 쥐가 난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4급 장애인이다. 인천의 목욕탕에서 매점 관리와 구두 닦는 일을 했다. 목욕탕 주인에게 보증금 4000만원을 맡기고 일을 시작했지만 장사가 쉽지 않았다. 바람을 피운 부인과 한 차례 이혼했다. 2001년 중국인 여성과 재혼했는데 어느 날 아내는 전 재산 7400만원을 들고 도망갔고 태씨는 1년 뒤 돌아온 아내를 살해했다. 자신도 자해한 뒤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20시간이 지나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살인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이씨는 2009년 교회에서 “수감생활은 모범적인데 면회 오는 가족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태씨의 사연을 들었다. “살인자를 누가 용서할 수 있겠어요?” 이씨도 처음엔 태씨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딱히 없었는데, 그의 얘기를 들을수록 어려운 가정형편과 불행한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그를 다시 한번 세상에 꺼내주고 싶어졌다고 한다.

“목사님 소개로 왔어요. 불편한 건 없으세요?” 교도소를 찾은 이씨에게 태씨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이씨는 바쁜 와중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간식거리를 들고 교도소로 태씨를 찾아갔다. 그가 보증을 서준 덕에 태씨는 수감생활 6년 만에 가석방됐다.

출감한 태씨는 심신이 망가져 있었다. 매일 밤 가슴과 복부에 통증이 찾아왔다. 부인을 죽였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잠을 못 이뤘다. 이씨는 갈 곳 없는 태씨를 거둬들였다. 이때부터 이들의 동거가 시작됐다. 마침 부인이 고향인 중국으로 떠나 혼자 살고 있던 이씨도 외로운 터였다.

그해 12월 밤 여느 때처럼 영업 중이던 이씨가 태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급히 차를 집으로 몰았다. 방바닥이 피로 흥건했다. 태씨가 배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다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씨가 급하게 119를 불러 그를 이화여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실어갔다.

의사는 다행히 자해 흉기가 장기를 비켜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태씨는 한 달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다. 숨 쉬고 소변보는 게 어려워 코와 생식기에 호스를 꼽고 생활했다. 입원비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한 긴급지원자금과 태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병원에서 지불했다.

태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배가 저리고 어깨 통증이 심하다. 매일 약을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파 주로 집에서만 지낸다. 이씨는 그런 태씨를 매주 한 번씩 밖으로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한다. 쇠고기, 장어, 오리고기 등 몸에 좋은 음식은 꼭 함께 먹었다.

이씨는 태씨가 자살하려 했을 때를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하다고 했다. 이씨가 이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며 타이르자 태씨는 “아 왜 죽어, 오래 살아야지. 동생보다 오래 살 거야”라고 답했다. 이씨가 다시 “그럼 100살까지 살아야겠네” 했더니 태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죽긴 왜 죽어. 동생한테 받은 게 많은데 보답은 하고 죽어야지” 했다.

태씨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액에 장애수당을 합한 47만원이 전부다. 이씨는 그런 태씨가 재기할 수 있도록 서울 곳곳의 목욕탕을 돌며 구두닦이 일을 수소문하고 있다. 태씨의 꿈은 온전한 구두수선 가게를 여는 거다. 이씨와 자신을 치료해준 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씨는 미자립교회 6곳에 2년째 매달 쌀 20㎏씩을 기부하고 있다. 야간에 택시를 몰며 월 200만원 정도 벌지만 태씨와의 생활비를 대고 기부를 하고 나면 남는 돈은 없다. 그런 이씨의 꿈은 돼지갈비집을 차리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태씨도 함께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 인연도 없던 두 남자는 서로 ‘가족’이 되기를 택했다. 이제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