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로는 부족해” 원서 찾는 독자들

입력 2014-06-27 02:50
교보문고 외국서적 코너에 진열된 영국 소설 ‘미 비포 유’. 이 책은 26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외국서적(외서) 종합베스트셀러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국내선 유명하지 않은 영국 작가 조조 모예스의 장편 소설 ‘미 비포 유’(살림)가 출간됐을 때 시장에서 성공을 기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26일 현재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11주 연속 지키고 있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와 높은 시급에 끌려 간병인이 된 시골 처녀 루이자 클라크간의 로맨스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끝없는 유머와 가벼운 대화에 얹어선지 예상을 뒤엎는 성과를 냈다. 지난 4월 책 소개 프로그램인 ‘TV 책을 보다’에 소개된 것이 인기에 날개를 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책의 인기는 재미난 현상으로 이어졌다. 번역서를 읽은 사람들이 ‘날것의 맛을 느끼고 싶다’며 원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미 비포 유’는 교보문고에서 원서 판매량으로 집계한 외서(외국서적) 종합베스트셀러에서도 7주 연속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예스24에서도 ‘미 비포 유’가 주간베스트셀러 20위권에 첫 진입한 지난 4월 3일 전후로 원서 판매량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진입 한 달 전엔 160권이 팔렸지만 진입 후 한 달간은 420권이 판매됐다.

원서는 번역서보다 이른 2012년 9월부터 선보였다. 한동안 판매량이 미미했었던 점을 감안하면 번역서의 인기가 ‘원서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살림출판사 관계자는 “양이 많아 번역하면서 상당한 분량을 축소했다”며 “책에 매료된 사람들이 원작자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 언어로 맛보고 싶어 원서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번역서의 흥행 성공이 대개 원서의 인기로 이어진다.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던 ‘정의란 무엇인가’는 교보문고에서 2010년 종합 1위에 오르면서 다음 해 외서 베스트셀러 1위로 이어졌다. ‘시크릿’도 2007∼2008년 2년 연속 외서분야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의 흥행도 원서 판매량 증가에 일조한다. 대표적인 게 지난 1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다. 예스24에 따르면 ‘겨울왕국’ 원서인 ‘Frozen’은 영화 개봉 전 한 달 동안 11권 팔리는 데 그쳤지만 개봉 후엔 한 달 만에 1050권이 팔렸다. ‘위대한 개츠비’ ‘파이이야기’도 영화 덕에 지난 해 외서 베스트셀러 1, 2위에 올랐다.

특이한 경우도 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뉴욕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영문 서적 판매량이 늘었다. 이 책은 2011, 2012년 외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의 산물인 만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완벽한 표현을 찾기 힘들고 그래서 의미나 맛이 변형될 수밖에 없다. 외국서적 수입업체 동방도서판매의 손용준 부장은 “원작자의 의도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독자들의 욕구가 원서 찾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사진=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