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관이 명관이라지만 인재풀 그렇게도 좁나

입력 2014-06-27 02:30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키기로 했다. 안대희·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가지도 못한 채 중도 낙마하자 정 총리 유임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총리 후보자 두 명의 잇따른 자진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에다,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해 사실상 경질됐던 총리의 유임이라는 진기록을 우리 헌정사에 새롭게 남기게 됐다.

청와대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대개조를 위한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인데 총리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로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화돼 고심 끝에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지난 4월 27일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를 유임시키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 미봉책임을 자인한 셈이다. 후임 총리를 다시 지명할 경우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정식으로 임명되려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석 달 가까이 총리 부재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 게다가 자질 시비가 재연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해명대로 새 총리 후보자 선택이 국정공백 장기화와 국론분열 악화로 이어질 소지가 없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전혀 다른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수차례 언급하면서 공직사회 혁신과 관피아 척결 등 국가 개혁의 적임자로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새 총리를 찾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에 대해 국가 대개조를 주도할 ‘적임자’라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고, ‘코미디’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문창극 전 후보자가 물러난 지 불과 이틀 만에 정 총리 유임을 발표한 데서는 박 대통령의 독선과 오기도 읽힌다.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연거푸 낙마시킨 야당에 대해 ‘청문회를 빌미로 계속 국정의 발목을 잡겠다면 나도 내 방식대로 가겠다’는 반발 심리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대응은 곤란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박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들이 요구하는 새 총리 후보자를 고르는 일에 정성을 들였어야 했다. 대통령 주변에서만 찾지 말고 폭넓게 인재를 구했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자세를 좀 더 낮춰야 한다. ‘인사 참사’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박 대통령은 본인에게 잘못이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겨냥하고 있다. 실제 김 실장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김 실장 경질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울러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났듯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와도 국정 운영 전반에 관해 진솔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