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사랑한 둥근 문인화의 세계

입력 2014-06-27 02:50
용무늬가 호쾌하게 그려진 17세기 철화백자들. 호림박물관 제공

달처럼 흰 백자 항아리를 화폭으로 삼아 도화서 화원과 선비들이 붓을 들었다. 꽃 나무 새 용과 봉황이 백자호의 둥근 면을 따라 피어오르고 날아오르는 듯 입체감을 얻었다.

호림박물관의 조선 백자 전시 시리즈 두 번째인 ‘백자호Ⅱ-순백에 선을 더하다’가 다음 달 1일부터 서울 신사동 신사분관에서 열린다. 회회청(코발트 안료)과 철사안료(산화철을 이용한 흑갈색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철화백자들이 대거 선보인다.

모두 둥근 어깨에 날렵한 아랫도리를 가진 입호(立壺) 형태의 백자들이다. 소박한 백자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푸른 안료로 용과 봉황을 그린 대형 청화백자입호에서는 조선 왕실의 위엄이 느껴진다. 적갈색으로 휙휙 호쾌하게 그려낸 나무에는 모던한 추상이 맛이 있다.

청화백자는 당시 회회청의 파란색으로 문양을 그려 꾸민 작품이다. 청화백자가 처음 등장한 15세기 중엽에는 회회청이 귀한 안료였기에, 왕실 도화서 화원만이 임금이 사용하는 고급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적갈색·황색 그림이 그려진 것은 철사안료를 쓴 철화백자다. 17세기 당시 철화백자는 선비들끼리 선물로 주고받을 정도로 성행했다. 화원이 그렸던 청화백자에 비해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활달한 필치로 해학적이고 간결하게 대상을 표현해 친근감을 준다. 하얀 자기 위에 그린 사군자는 그 자체로 문인화였다. 호림미술관은 “분청사기와 함께 한국미의 원형으로 평가 받는 것이 철화백자”라고 소개했다.

호림미술관은 상반기에도 백자호 전시회를 열었다. 순백 항아리의 단아한 빛깔을 보여주었던 ‘백자호Ⅰ-너그러운 형태에 담긴 하얀 빛깔’에 이어 청화·철화백자의 강건하고 웅장한 자태를 조명한다. 조선왕조 전 시대에 걸쳐 제작된 백자 항아리를 총망라한 셈이다. 전시 작품은 모두 호림미술관 소장품이다. 조선 백자호의 단아하고 너그러운 형태와 청화·철화로 그려진 다양한 문양을 통해 조선시대 미의식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입장료는 8000원이다.

김지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