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휴대전화 내용 열람때 영장 제시하라”

입력 2014-06-27 02:58

경찰이 정당하게 체포한 범죄 용의자의 휴대전화라 하더라도 수색영장 없이는 그 내용을 열람할 수 없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디지털 시대에서 사생활 보호를 위한 ‘중대한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해 오던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 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대법관 9명 만장일치로 경찰이 휴대전화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법원으로부터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현대의 휴대전화는 단순한 기술적 편의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사생활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또 “기술 발전으로 사생활 정보를 손안에 휴대할 수 있다고 해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판결이 미국에서 사소한 범죄를 포함해 매년 체포되는 1200만명에 우선 적용되지만, 그 영향은 훨씬 심대할 것으로 예상했다. 태블릿PC와 노트북 컴퓨터는 물론 가정과 직장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도 이 판결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불합리한 수색과 압수에 대응해 국민의 신체, 주거, 문서, 소유물을 확보할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제4조의 취지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경찰이 안전이나 증거 보전을 위해 용의자의 호주머니에서 소지품을 꺼낼 수 있었다. 특히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이후에는 경찰들이 체포된 용의자의 휴대전화까지 압수해 내역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마약범죄 용의자가 미 법무부를, 또 다른 조직범죄 용의자가 캘리포니아 주정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2개의 소송에서 비롯됐다.

법무부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체포한 용의자의 휴대전화에 내장된 정보를 범죄 혐의 입증에 사용했지만, 영장을 발부받지는 못한 상태였다. 1심과 2심에서 영장 없는 휴대전화 정보 열람은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대법원은 “중립적인 위치의 법관으로부터 발부된 영장이 있어야 휴대전화를 수색할 수 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다만 미 대법원은 매우 명백하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긴박한 상황에 대해서는 사전 영장 없이도 휴대전화 수색이 가능하다고 예외를 인정했다.

한국의 경우 경찰관이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으며 내용을 보기 위해서는 48시간 내에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통상 임의제출 형식으로 마음대로 보고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