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도 자주 하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언론에게 인사검증은 그런 일 중 하나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다 보니 이력이 붙었다. 공개된 자료를 기초로 몇 개 항목만 확인하면 된다. 불행히도 많은 후보들은 이 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장상 총리 후보자가 시작이었다. 장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아들의 이중국적이 문제였다. 장 후보자 낙마 이후 검증의 두 가지 기준이 세워졌다. ①집을 제외한 땅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다. 본인은 투자나 노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투기로 받아들인다. ②자녀들이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 치명적이다.
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자녀들의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낙마했다. 한 가지 기준이 추가됐다. ③위장전입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코드 인사로 인한 감사원 독립성 훼손 우려가 이유였다. 다시 기준 추가다. ④지나친 코드 인사는 곤란하다.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①번과 ③번에 걸려 사퇴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논문 표절 및 중복 게재 의혹으로 사퇴했다. 논문 표절이 ⑤번 기준이 됐다.
이명박정부 들어서도 참사는 되풀이됐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①번과 ②번을 넘어서지 못했고,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①번 기준에 제대로 걸렸다. 새로운 기준도 추가됐다. ⑥번 전관예우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월 1억원의 수입으로 전관예우 논란에 시달리다 청문회 전 사퇴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달라진 건 없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아들 병역면제 의혹과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지명 5일 만에 사퇴했다. ①번과 ②번이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전관예우인 ⑥번의 그물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지난 24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역사인식이라는 색다른 기준으로 낙마했다. 친일 논란이었지만 넓게 보면 ④번 ‘지나친 코드 인사’의 경우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보수색이 강한 문 전 후보자의 성향이 교회에서의 발언으로 증폭됐고, 이러한 인식과 국민 정서 간 괴리가 커지면서 낙마했다. 이외에도 스폰서 의혹, 특수업무경비 유용 등의 이유로 낙마한 사례도 있었고, 재산을 백지신탁하지 못해 자진 사퇴한 경우도 있었다.
4개 정권 15년을 거치면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낙마 이유가 10개가 되지 않았다. 검증 기준이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다. 그럼에도 신기할 만큼 제대로 걸려든다. 저마다 정권을 잡고 널리 인재를 구하고 대단한 인사검증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10개 기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참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말 우리나라 엘리트층 중에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고, 아들은 군대에 보내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돈을 벌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 없는 것일까. 지난 정권 청와대에서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정말 없나요?” 답은 이랬다. “왜 없겠습니까. 찾아보면 많아요. 그런데 자기들이 쓰고 싶은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으니 문제지요.”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만 쓰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부활하고 국회 청문회 제도를 고친다는데, 글쎄다. 제도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도영] 장상부터 문창극까지
입력 2014-06-27 0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