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월드컵은 ‘감독들의 무덤’ 남거나… 짐싸거나… 버티거나

입력 2014-06-27 02:27
2014 브라질월드컵도 어김없이 감독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 남미의 초강세에 밀린 아시아와 유럽 지역 감독들이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사퇴 러시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 대표팀의 알베르토 자케로니(61·이탈리아) 감독은 26일(한국시간) 브라질 이투의 베이스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략과 전술을 내가 결정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했다. 일본은 C조에서 1무2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16강 진출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조별리그 3차전에 나섰지만 콜롬비아에 1대 4로 대패하며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개막을 앞두고 네 번의 평가전에서 전승하며 4강 진출을 호언했던 자케로니 감독은 본선에서 1승도 챙기지 못한 채 서둘러 가방을 꾸려야만 했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61·포르투갈) 감독도 F조 3차전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1대 3으로 완패한 뒤 사퇴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1승도 없이 F조 최하위로 탈락한 것이 원인이었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과 사랑에 빠졌지만 짝사랑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아프리카·북중미 지역에서도 감독 희생자가 속출했다.

B조에 속했던 스페인의 비센테 델 보스케(64) 감독은 자신의 지휘를 받은 공격수 다비드 비야와 함께 떠났다. 사퇴 기자회견에서 “품위 있는 방법으로 물러난다”고 말했다. 월드컵 우승 뒤 조별리그 탈락은 델 보스케 감독의 경력에 오점으로 남게 됐다.

‘죽음의 조’로 불린 D조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탈리아의 경우 축구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모두 물러났다. 체사레 프란델리(57) 감독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은 지안카를로 아베테(64) 회장은 “이탈리아 축구는 이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의를 밝혔다. 코트디부아르의 사브리 라무쉬(43·프랑스) 감독과 온두라스의 루이스 수아레스(55·콜롬비아) 감독도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버티는 감독도 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 등 국제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의 내홍을 수습하기 위해선 자신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다.

D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종주국의 자존심을 구긴 잉글랜드의 로이 호지슨(67) 감독은 “물러날 이유가 없다. 유로 2016까지 이끌고 싶다”고 밝혔다. B조에서 3전 전패로 탈락한 호주의 엔제 포스테코글루(49·그리스) 감독은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이 풍전등화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