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여행가방에 넣을 당신의 휴가책은?… 러시아 코믹 잔혹극·프랑스 밀실 스릴러·일본 SF미스터리

입력 2014-06-27 02:26
프랑스 소설가 프랑크 틸리에의 소설 ‘현기증’은 동굴이란 특정 공간에 갇힌 세 남자가 생존을 위해 추악하게 변해 가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밀실 스릴러다. 사진은 프랑스 원작의 앞표지. 은행나무 제공
2010년 2월 25일. 사방은 어둡고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왼쪽 손목에 채워진 금속성이 느껴진다. 족쇄다. 그는 손에 들려 있던 라이터를 켠다. 동굴 속 텐트 안에 있는 그의 이름은 조나탕 투비에. 에베레스트 등에 올랐던 전문 산악인이다.

동굴 안을 살피던 그는 자신이 기르던 개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또 철가면을 쓴 덩치 좋은 남자,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랍인 10대 소년이 있다. 그들도 투비에처럼 이 곳에 있는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세 사람과 한 마리 개의 기묘하고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밀실 스릴러’란 설명이 붙은 소설 ‘현기증’은 주인공 투비에를 통해 극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포기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잔혹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극한의 추위와 공포에 빠진 주인공에 몰입하게 된다. 때론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여름이 찾아왔다. 더위에 늘어진 뇌세포를 팽팽하게 조여 줄 미스터리 소설들이 여름에 맞춰 속속 출간되고 있다. 같은 미스터리지만 프랑스, 체코, 일본, 러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스릴러·추리 등 다양한 분야로 각자의 색을 보여주고 있다.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는 뜻이다.

‘신드롬E’ ‘가타카’ 등 출간하는 책 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에서 ‘틸리에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가 프랑크 틸리에는 ‘현기증’을 기존 스릴러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살인 사건과 단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일반적인 스릴러와 달리 이 소설은 먹을 것도 없이 동굴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러시아의 ‘괴짜 할머니 작가’로 불리는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의 책은 제목부터 기묘하다.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는 그녀의 단편 소설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주인공과 이야기는 모두 달라도 웃기면서도 등골이 오싹한 것이 코믹 잔혹극을 보는 듯하다.

표제작은 공동 주택에 사는 한 미혼 여성의 이야기다. 친하게 지내던 이웃의 여자가 임신을 하자 질투에 사로잡힌 그녀는 급기야 이웃 여자의 딸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 아이 옆에 양잿물이 든 양동이를 두는 등 다양한 방법이 구사된다.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는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별칭답게 SF미스터리라는 독특한 소설을 내놨다. 1995년 일본에 출간된 ‘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다.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한편의 사랑 이야기에 미스터리를 덧입혔다.

체코의 ‘움베르토 에코’라 불리는 밀로시 우르반은 고딕 스릴러 ‘일곱 성당 이야기’를 선보였다. 중세 군주국의 재건을 노린 살인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돼 경찰 제복을 벗은 주인공 K의 얘기다. 진실을 파헤치는 K의 이야기가 프라하 거리와 중세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밖에 2010년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오수완의 두 번째 장편 소설 ‘탐정은 어디에’와 캐나다의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리는 루이즈 페니의 ‘가장 잔인한 달’이란 탐정 소설도 눈길을 끈다.

미스터리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엘릭시르의 임지호 편집장은 “스웨덴 등 북유럽 작가들의 미스터리물이 인기를 끌자 출판사들이 프랑스 러시아 체코 등으로 외연을 넓혀 다양한 미스터리 소설들을 선보이고 있다”면서 “나라별로 범죄 양상이나 사회 현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