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교향악단 예술감독인 지휘자 정명훈의 연봉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2011년 그의 재계약을 앞두고 서울시의회에서 20억원에 이르는 연봉과 활동비가 너무 많다고 문제 삼았다. 그가 촛불집회를 비난했다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환희의 송가’를 연주해 권력에 아첨했다는 인신공격까지 이어졌다. 정명훈을 옹호했던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음악이나 예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설픈 정치논리를 끌어다가 망나니질을 한 셈”이라고 거칠게 반박했다.
사실 지휘자의 능력에 따라 교향악단의 수준이 달라지고 관객숫자가 요동친다. 정명훈의 경우 취임뒤 관객이 3배 이상 늘었고, 관람료 수입도 40억원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주판알을 튀겨보면 오히려 이익이라는 것이다. 외국의 유명 지휘자는 정명훈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영국의 음악평론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지휘자 한명의 연봉이나 정치적 성향보다 클래식 음악계의 양극화와 몰락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연주가들은 레슨을 병행해야 겨우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을 정도로 궁핍한 상황인데, 그들을 이끌어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들은 ‘마에스트로(거장)’라 불리며 여객기 1등석에 앉아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면서 한번의 공연에 수 천 만원을 받는다.
지은이가 보기에 대중의 숭배를 받는 이 거장 지휘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망치는 주범이다. 거대 음악 산업이 쥐어주는 권력에 취한 이들이 음악계의 민주적 소통을 억압하고 음악의 발전을 막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클래식 음반 시장이 위축되고 활기를 잃은 것도 이른바 거장들이 쌓은 이런 ‘적폐’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책은 베토벤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전까지 서양 음악에 지휘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연주자들끼리의 눈짓과 호흡으로도 충분히 하모니를 이룰 수 있었다. 베토벤은 기존 교향악단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더 많은 연주자가 필요한 곡을 썼다. 자신이 직접 손짓으로 연주자들을 지휘하려 했으나, 이미 귀가 멀고 정신이 흐려져 실패로 끝났다. 대신 전문 지휘자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20세기 마이스터 신화의 주인공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비중 있게 다뤘다. 그가 나치 정권에 협력했다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세계적인 거장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2차대전 이후 LP음반과 스테레오 사운드가 출현하면서 새롭게 열린 클래식 음반시장 덕분이었다. 대중을 매료시킬 지휘자를 찾던 영국의 음반회사 EMI는, 더 뛰어난 능력의 지휘자들도 있었지만, 젊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카라얀을 선택했다.
“카라얀은 히틀러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바로 놀라운 집중력, 장기적인 목표를 향한 절대적 헌신, 그리고 남녀 모두를 매료시킨 금욕적인 무성애성이다.”(245쪽)
연합군의 나치 부역자 활동 금지 조치 때문에 공연에 나설 수 없었던 카라얀은, 대신 영국 런던의 EMI스튜디오에서 10년 동안 150회의 녹음을 했다. 그리고 실제 연주로는 벌 수 없는 큰 돈을 쥐게 된다.
카라얀이 배운 건 히틀러의 카리스마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배경 위에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진을 이용해 고독한 마이스터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진집을 펴내면서는 “이 사람만큼 카메라를 싫어하는 사람을 상상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카라얀은 권력이 되었다. 그 권력의 혜택을 입으려는 이들은 그의 절대적 독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연주자들은 리허설 일정도 모른 채 무조건 그의 부름을 기다려야 했다. 음반사들은 그의 이중계약에도 항변을 못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명반들이 면죄부가 될까? 빠른 템포와 몰입감으로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교향악을 재해석해 각광을 받긴 했지만, 비극적인 감정이 담긴 작품에는 그의 지휘가 어울리지 않았다. 더 젊은 지휘자들이 스타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까지 했다. 지은이는 “카라얀이 유럽 음악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평론가의 비판을 전한다. 이제 클래식 음악은 마에스트로가 부유해질수록 악단은 궁핍해지는 하나의 연예 사업이 되었다.
한국의 독자라면 이 책이 정명훈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중국과 한국이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며 “유럽이 중심이던 예술 형식의 미래가 아시아의 끝으로 옮겨갔다”고 썼다.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도 높이 평가했다.
한국어판은 음악평론가가 번역을 맡아 40쪽에 걸친 해설과 친절한 각주를 붙여 읽기 쉽게 배려했다. 역자가 부록으로 첨부한 홍난파에서 성시연에 이르는 한국 지휘자의 역사도 흥미롭다. 김재용 옮김.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책과 길] 마에스트로, 음악 권력이 되다
입력 2014-06-27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