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남는 것은 추억, 그리고 사람

입력 2014-06-27 02:57

“야, 빨리 가운데로 모여 봐! 자, 찍는다. 하나 둘 셋!”

입술과 눈가에 경련이 실실 일어난다. 그래도 좀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예쁘게만 나온다면야. 찰칵!

어릴 때만 해도 카메라는 귀중품이라 있는 집보다 없는 집이 더 많았다. 사진 찍는 자체가 귀한 일이다 보니 인화한 사진들은 앨범에 귀빈 대접을 받으며 차곡차곡 들어앉아 있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년기 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것이 늘 아쉬웠던 나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카메라가 있는 아이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한 장만’이라고 부탁하거나 친하지 않은 무리에 끼어서라도 사진을 남기려고 필사의 노력을 했다.

마침 카메라가 저렴하게 보급되던 대학 시절 나의 한풀이가 시작되었다. 어딜 가나 독사진이든 단체사진이든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결국 사진을 인화할 땐 제일 많이 찍은 사람인 게 탄로 나 친구들의 놀림과 면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남아 있지 않은 나의 역사와 추억을 보상받고 싶었다.

한풀이가 끝나고 사진 찍는 일이 시들해질 무렵, 디지털 카메라가 일으킨 ‘혁명’의 불똥이 나에게도 튀었다. 이제 주변 사람들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필름 때문에 인색해지던 마음도 사라지고, 한껏 인심을 써가며 사람들을 찍어댔다. 친구와 동료들의 일상을 담는 일이 내가 찍히는 일보다 재미있었다. 첨엔 싫다던 이들도 나중엔 그때 그 사진을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며칠 전 사진이 너무 많아 휴대전화에 과부하가 걸렸다. 안 되겠다 싶어 한장 한장 지우기 시작했다. 최근으로 다가오며 앨범엔 엇비슷한 나의 셀카나 누구랑 같이 갔는지 기억도 희미한 카페의 찻잔과 접시, 언제 핀 건지 모르겠는 화단의 꽃잎 같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없고, 누군가도 없는, 누군가와도 함께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사진들.

동료들과 함께한 행사장에서 둘씩 셋씩 모여 사진을 찍는 대신 예쁘장한 소품과 셀카를 찍기 바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카메라가 흔해졌다 해서, 사람들과의 추억이 더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수천장의 사진들처럼, 그렇게 쉽게 흩어지고 얕게 기억될 뿐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그마저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지금. 내 삶의 카메라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