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사건으로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원인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든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데 익숙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선호도 등을 바탕으로 우리 편을 선호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그런 차별은 행하는 사람에겐 사소해 보일지라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느껴집니다. “전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본성을 드러내곤 한답니다.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을 범한 젊은이도 동료로부터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파괴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분출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병영문화에 원인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계급 열외’나 ‘기수 열외’와 같은 따돌림문화가 그동안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문화가 변화하는 데는 퍽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동안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의 뿌리는 개인주의의 토양이 빈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집단 따돌림이 이번 사건에 부분적인 원인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젊은이에게 면죄부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이 완벽할 수 없듯 그런 문화조차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범죄를 저지른 병사 자신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병영이라고 해서 절해고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가 고스란히 병영으로 옮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선 지휘관을 만나보면 가정 문제나 정신 및 심리적인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입대하고 있다 합니다. 우리나라 이혼율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단체생활에 적응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사람이나 원래부터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질병을 앓는 사람 중에도 다수는 입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관심병사를 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질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병사에 포함되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 쓰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예산이나 인력 모든 면에서 녹록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런 사건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을 파악해 제도를 고치는 일을 꾸준히 추진함과 아울러 근원적 대책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것일까요. 제도를 고치고 예산을 지원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마련되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병영의 물리적 환경이나 병영문화를 이상적인 상태에 가깝게 만들어내더라도 근본적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게다가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정신 및 심리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은 점점 늘 것으로 봅니다.
근원적인 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역경과 시련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경험하는 대단한 변화를 수없이 들 수 있겠지만 이 가운데 하나가 역경이나 시련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점입니다. 집단 따돌림과 같은 것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전형적인 역경이나 시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흔히 “인생의 경험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덕담을 들려줍니다. 성경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사람에게 더욱 견고한 역경관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이렇게 역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어떤 시련이나 역경에 굴복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역경 자체를 더욱 귀한 인생의 경험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길임에 대해서도 확신을 심어줍니다. “나의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이 말씀도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사람에게 위안과 확신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순간들을 꽃봉오리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가운데 가혹한 역경이나 시련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라봄에 근본적인 변혁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다른 근원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노력은 부분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역경의 순간을 인생의 꽃봉오리로
입력 2014-06-28 02:24 수정 2014-06-28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