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50)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얼굴엔 강한 의지와 자신감, 희망이 보였다. 그는 ‘제주의 아들’로서 제주를 ‘대한민국 보물’로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말했다. 전통과 문화가 있고, 아름다운 도시로서 품위가 있는 ‘체류형 고품격 휴양지’가 목표라고 했다. 대통합과 협치(協治)도 바로 이런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6·4지방선거에서 제주도민이 기대하면서 성원을 보냈던 것 이상으로 그의 피는 뜨거웠다.
-선거에서 경쟁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에게 인수위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정준비위원장을 맡겼고, 신 후보가 기꺼이 받아들였다. 지방발 새로운 정치실험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왜 이런 구상을 했나.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여야의 협력정치, 민간이 관의 행정에 참여하는 협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선자 정책이든, 낙선자 정책이든 제주도의 발전과 도민들의 삶을 위해 원점에서부터 모두 검토 대상에 올려놓아 합칠 것은 합치고, 차별성이 있으면 준비위원회에서 다시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당선자의 정책이라고 반드시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도 버렸다. 지난 20년간 제주사회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심하게 분열돼 있었다. 전국 1%의 섬이, 지금까지 작은 역량조차 하나로 모아내지 못했다. 지금부터라도 1%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1%의 단결부터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화해와 상생의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 새정치연합에 인사와 정책을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여야는 서로 다른 것이지, 선과 악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좁혀갈 수 있다.”
-인사까지 야당과 논의할 의향이 있나.
“야당이 천거한 인사를 통해 큰 폭의 통합과 건강한 내부견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사 추천은 도지사가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가급적 폭넓게 협의할 것이다. 제주도정의 미래 비전과 목표를 위해 여야를 떠나 일과 능력 중심의 인재를 등용할 생각이다.”
-6·4지방선거를 계기로 신 전 지사를 포함해 우근민·김태환 전 지사까지 소위 ‘제주판 3김’ 시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원희룡 시대 제주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저에게 표를 주신 60%의 도민들뿐만 아니라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40%의 도민들의 목소리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0년간 종종 쓰였던 ‘승자독식’ ‘일방통행’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도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변화를 이뤄내고, 이를 원동력으로 대한민국의 변화를 일으키겠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대통합의 정치’ ‘다른 정치’가 제주에서 시작될 것이다.”
-서울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 고향 제주에서 도지사에 나온 이유는.
“제주를 떠난 이후 학창시절이건, 정치생활을 하던 때이건 제주의 아들임을 잊은 적이 한시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제주도는 난개발을 방치하면서까지 양적 성장을 해왔다. 이제 점검을 해보고 새롭게 제2의 도약을 해야 할 때다.
제주도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다르다. IT 등 인프라가 완벽하게 구축되고 청정한 자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품격 있는 관광·휴양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중국 등 해외 관광객 및 투자자들이 제주에서 1∼2개월 쾌적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업무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를 싸게 팔아서는 안 된다. 비싸게 빌려주는 방향으로 투자유치 정책도 전환하겠다.”
-차세대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앞으로의 로드맵은.
“대권을 위한 로드맵은 없다. 도지사로서의 일, 도민이 부여해준 직위에 대해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4년의 임기 내에 어떻게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도민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을 해낼 것인지만 고민하고 있다. 고향 제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음으로써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드리겠다. 제주에서 즐거운 변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통해 원희룡의 진가를 증명해 보이고, 이런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국민적 수요를 창출하고 싶다. 제주도지사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드리고, 그 다음에 기회를 열어나가겠다. 대통령을 만들고, 시기를 결정하고 하는 것은 하늘이 하고, 국민이 하는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는 등 박근혜정부는 인사 실패로 심각한 난맥상에 빠져 있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 개조론은 대단히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 대개조를 밀고 나갈 중심 사령탑인 제2기 참모와 내각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상당히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대통령부터 자기반성, 자기개조를 하지 않고 남 탓을 하거나 아랫사람을 야단치는 걸로 비치면 국민들은 ‘기본을 안 지키며 개조해야 할 대상은 권력층’이라고 항변한다. 국가 대개조는 소통과 공감의 토대 없이는 또 정쟁화할 수 있는데, 그 점에서 박 대통령이 참 어려우실 것 같다.”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좌우명은.
“사람은 모두 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공적인 일을 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입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의 일이 뜻대로 안되고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의 정신, 현장을 중시하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귀포=글·사진 오종석 정치부장 jsoh@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오종석 정치부장이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를 만나다
입력 2014-06-27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