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헤모글로빈 분자는 왜 아름답게 움직일까

입력 2014-06-27 02:27

서울대 도서관의 대출순위 1위를 몇 년째 기록하고 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생리학자다. 인간 몸속의 쓸개를 연구하던 과학자가 어쩌다 1만3000년 동안 진행된 모든 민족의 역사를 개관하는 책을 쓰게 되었을까?

다이아몬드는 지은이와의 대화에서 “쓸개를 들여다보는 것과 인간 사회를 관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쓸개를 연구할 때는 세포가 200가지 화합물을 얼마나 잘 통과시키는지 측정했고, 인간을 관찰할 때에는 실험을 못하는 대신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무엇이 문명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지 추론했다.

독일의 과학전문 기자인 지은이와 이 통섭적인 과학자의 대화는 인종주의 청산, 역사 속의 우연과 필연, 과학계의 배타적 관행, 그리고 이스터섬에 거대한 석상만 남은 이유를 이야기하는 데까지 나간다. 마치 식당종업원이 계산서를 내밀 듯이 곤란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쓰윽 던지며 대화를 이끌어가는 지은이의 모습에 내공이 느껴진다.

이 책에는 모두 13명의 과학자가 등장한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이면서 시인인 로알드 호프만, 유럽의 마지막 궁정천문학자인 마틴 리스, 신경경제학의 대가 에른스트 페르, 과학과 종교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 등과 인터뷰한 내용이 전문 그대로 수록됐다. 독자도 같은 자리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듯 술술 읽힌다.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최신의 연구 업적을 설명하거나 낯선 과학 용어를 풀어내려 하진 않는다. 데이터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포착해낸 과학자들에게 “당신이 엿본 인간과 우주의 비밀은 어떤 것이었나”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유기화학 반응을 예측하는 ‘호프만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와 헤모글로빈 분자의 움직임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들은 왜 아름다움을 느낄까요?”라고 묻는다. 호프만은 이렇게 답했다.

“아름다움이나 추함 같은 범주는 부분적으로 유전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원래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꼈을 거에요. 특정한 식물과 생동하는 자연에 끌렸겠죠. 이런 연유로 우리가 지금도 살아있는 것, 불규칙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한자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는 큰(大) 양(羊)을 의미한다. 먹을 게 많으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다. 과학자와의 대화는 이타심과 역사, 세계의 시작과 끝, 종교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과학과 철학, 자연과 인문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전대호 옮김.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