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19) 빈민가의 간 부은 여행자-베네수엘라 바리나스 빈민가에서

입력 2014-06-28 02:12

전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빈민가에 혼자 들어간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가난에 찌든 이들에게 ‘내 것 좀 빼앗아 가주오’라고 광고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극빈층인 데다 치안까지 부재다. 경찰들도 전시행정만 하고는 이들에 대한 관리를 꺼린다. 여행자들의 기피 지역일 수밖에.

바리나스 외곽을 지나다 판자촌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고단한 삶이 반복될 것 같은 빈민가였다. 게다가 마을은 거대한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과 저곳은 그렇게 나뉘어 있었다. 마을 전경만으로도 예민한 방어 기제가 엄습해왔다. 내전이 있었던 곳 같은 흉흉한 광경이었다.

호기심에 결국 위험한 초대에 응했다. 자전거를 밀고는 빈민가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남자들과는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최대한 태연하게 마을을 살펴봤다. 가능하면 이런 곳에 세워진 현지 교회도 보고 싶었다.

우선 아이가 있는 집에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해 들어갔다. 남의 집에 들어간다는 건 최소한 보호는 받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다. 동네뿐만 아니라 집 주위에도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왔는데 달리 일자리도 없고 집도 없어서 사람들이 여기로 모여들었지요. 안타깝게도 당신이 찾는 교회가 이곳엔 없어요. 이런 곳에 어떤 성직자가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순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차를 내오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마을을 구경했다. 다행히 낮시간이라 다들 일하러 나섰나보다. 위협적인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판잣집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비루했다. 그러나 한편 묘한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감정과는 달리 그렇게 삶이 우울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잠시 만난 고등학생 카렌은 학교에 다니며 방과후에는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일한다고 했다. 또 동네 이웃 남자들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러 나가기도 했다. 아기를 돌보는 여인들은 희망의 씨알을 붙들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은 분명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힘을 내고 있었다. 희망의 싹을 틔워 줄기가 되고 열매를 맺는 꿈을 꾸고 있었다.

차 한잔 앞에 두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자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낮의 사람들과 밤의 사람들은 또 다를지 모른다. 떠날 채비를 하고 일어났다. 내가 만난 세 가정에서 모두 손을 흔들며 정답게 배웅해 주었다. 특별한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하지만 낯선 이를 만났다는 반가움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나는 몹시 기뻤다. 가끔은 그냥 마주앉아 있는 낯선 상황이 행복할 때가 있다. 빈민촌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라진 것도 흡족한 마음의 한 부분이었으리라.

그렇게 잔잔하게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빈민촌을 빠져나와 뒤돌아 다시 그곳을 바라봤다. 그때 방금 전까지 마음 따뜻하게 있었던 곳이라곤 믿기지 않는 독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방문자가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철조망에다 판잣집으로만 이뤄진 마을 외곽. 교회조차 들어가지 않는 땅,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처음 느낌이 선연히 되살아났다. 언제쯤 이곳에도 하나님을 노래하고 평화가 찾아오며 봄볕 같은 이웃 사랑이 도래할 날이 올까? 기도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