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자진사퇴와 관련한 후폭풍이 박근혜 대통령 비선(秘線) 인물들의 추천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베일 속에 가려진 인물들이 문 전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청와대에 총리로 추천했다는 게 비선 논란의 핵심이다. 잇단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서 비선 논란으로 옮겨지는 형국이다.
문 전 후보자와 이번 개각에서 기용된 일부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비선 인물들의 추천을 받아 이들을 낙점했고,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25일 비선 인물들의 인사 추천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SBS라디오에 출연해 “비선 라인이 인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국민과 정치권 등에서 갖고 있지 않느냐”면서 “문 전 후보자 추천은 청와대 비선 라인인 ‘만만회’에서 했다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만만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야권 인사는 “만만회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 박 대통령의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모아 만든 것”이라며 “만만회는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소문이 정치권 안팎에서 파다하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문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 논란과 관련해 여권 비선 인사들의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비선 인사들이 청와대에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을 추천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면서 “청와대가 비선 인사들의 추천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비선 라인 논란은 워낙 휘발성이 큰 사안이라 조심스럽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비선 라인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 여권 내부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확인되지 않은 비선 논란이 ‘김기춘 지키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 비서실장을 보호하기 위해 비선 인물들에게 있지도 않은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비선 인사들이 추천했다고 하더라도 김 실장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더 거세다. 특히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김 실장이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김 실장이 현 여권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짐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는 인사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사 시스템에 변화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인사의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며 박근혜정부가 설치한 기구다. 김 실장과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민정수석 홍보수석 등 측근 인사들로만 인사위원회가 구성되다 보니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됐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나오지 않았으나 ‘외부 인사의 인사위 참여’나 ‘당·청 인사위 운영’ 등이 거론된다. 당권 도전에 나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차제에 외부인사위원회 시스템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대 출마를 선언한 김영우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인사 시스템 자체가 너무 폐쇄적이고 비밀주의”라며 “당과 청와대가 인사위원회를 같이 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개혁성을 갖추고 여론과 청문회를 무난하게 잘 통과할 분을 신중히 골라야 하는 과제가 있고, 또 시간적 여유도 없어 될 수 있으면 빨리 (인선을) 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면서 “두 가지를 만족시키려면 열심히 선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문창극 후폭풍] 靑 인사위는 거수기?… ‘비선 추천’ 의혹 비화
입력 2014-06-26 02:51